<이준의 역학이야기>하필이면 진주의료원을
<이준의 역학이야기>하필이면 진주의료원을
  • 경남일보
  • 승인 2013.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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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다멸자(母多滅子)
‘약한 놈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에도 놀라고, 없이 사는 놈은 눈만 흘겨도 서럽다’는 말이 있다. 또 ‘보리누름에 중늙은이 얼어(굶어) 죽는다’, ‘오월 중늙은이 보리 까시리(가시랭이)에 찔려 죽는다’는 말도 있다. 보리가 누릇누릇해지는 오뉴월이면 날씨는 따뜻하지만 춘궁기(春窮期)라 영양실조에 딱 걸리기 좋은 시절이다. 이때 젊은이도 아니고 늙은이도 아닌 딱 50대에서 60대 초반 정도의 어중간한 사람이 어쩌다 간혹 불어든 찬바람을 견디지 못하여 얼어 죽는다는 말이다. 보리는 아직 익지 않아 먹을 것은 없고, 몇 톨 남은 곡식알은 애들 먹이고, 부모님 드리고, 막상 자기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거나 아무 것도 아닌 약한 보리 가시랭이에 찔려죽는다는 뜻이다. 이래저래 힘없고 돈 없고 백 없이 서러운 사람들만 죽을 맛이라는 말이다. 서민들의 삶이 참으로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빗댄 속말들이다.

진주의료원 휴업소식에 필자의 가슴만 철렁 내려앉았다. 지난 겨울 나이 드신 어머니께서 뇌졸중으로 쓰러져 경상대학교 병원에 입원하여 계셨는데, 이러저러한 여러 이유로 더 이상 장기입원은 어렵다는 의사의 통보를 받고, 이 사람 저 사람들의 말을 주워들어 진주의료원으로 병원을 옮길 참이었다. 필자는 부리나케 진주의료원으로 달려갔다. 환자들이 넉넉하게 다닐 수 있는 넓고 쾌적한 공간, 재활치료에 적합한 최적의 시설들, 무보호자 병실 및 간병인 운용방식, 경상대학교 병원의 진료비에 비하면 꿀맛같이 저렴한 의료비용. 정말 필자에게는 안성맞춤이자 안도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달콤한 계산은 흐뭇한 착각, 휴업결정 소식에 눈앞이 아찔해지고 잠시 멘붕(멘탈 붕괴)에 빠졌다. 할 수 없이 지금은 가까운 예손병원으로 옮겨 재활치료 중이다.

순간 공공서비스 공급을 단지 경영적자 및 강성노조 때문에 중단하는 것이 공적영역의 존립기준으로 볼 때 과연 타당한지 울컥 치밀어 올랐다. 그렇다면 거의 100%로 공적 경비로 운영되는 군인, 경찰, 공무원, 교육조직은 거의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경영적자 조직인데 그렇다면 이들 조직도 없애야 하는가? 아니지 않은가. 공공서비스 조직은 시장논리로 평가할 수 없는 고유의 공적 목적과 가치를 수행하고 있기에 국가가 존재하는 한 없앨 수는 없다. 공적조직이 있기에 연약한 약자들이 국가의 공권력을 믿으며 편안하게 살 수 있고, 양질의 공공서비스가 무료 또는 저렴하게 제공되기에 돈 없이 가난한 이들도 일상에서 함박웃음 터트리며 살아간다. 이런 처지에 진주의료원은 경남도에서 밝힌 것처럼 ‘민간을 포함한 수많은 공공의료서비스 제공기관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며 ‘지역거점 공공병원인 마산의료원은 적자가 발생하여도 신축을 추진 중’이라는 선언은 서부경남 지역주민들로서는 거의 절망에 가까운 잔혹한 폭탄투하이다. 이런 결정에 대한 제안이야 어느 부서, 어떤 부문, 어느 영역에서 누가 어떤 기준으로 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런 문안을 작성한 사람의 뇌리 속에는 서부경남 주민들의 생명쯤은 파리 목숨보다 못한 것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떻든 제안이야 누가 하였든 최종 결정권자는 도지사이며, 도지사는 이 문제의 최종책임자이다. 정확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홍 지사의 팔자는 계사(癸巳)년 계해(癸亥)월 을해(乙亥)일 정축(丁丑)시로 알려져 있다. 인수(印綬)가 충만하여 머릿속의 생각은 바다와 같음을 알 수 있고, 모다멸자(母多滅子)의 기운이 강렬하다. 을해(乙亥) 동주사(同柱死) 또는 병(病)의 기운이다. 애로우의 역설, 투표의 역설, 전쟁의 원인, 가능성 정리, 불가능성 정리, 사회적 선택과 개인적 가치 등으로 유명하고, 1972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애로우(K. J. Arrow) 역시 인수경향이 너무 강렬하여 머릿속의 숱한 생각을 하나의 입, 하나의 몸짓으로 표현하자니, 생각의 분량보다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극히 제한적이어서 함께 얘기하는 사람들조차 ‘저 사람 바보가 아닌가’, ‘미쳤구만’하는 오해를 하였다고 한다.

일당 800원짜리 경비원의 아들로서 서민들의 애환과 삶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알고, 누구나 좋아하였던 모래시계 검사, 저격수 국회의원, 변방의 아들이라는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생각 많은 도백(道伯)의 속내야 범부(凡夫)들이 알 수 없지만 보다 따스한 마음으로 없이 사는 서민들의 애환과 삶을 보살펴 주었으면 한다. 임술 대운 순이 아닌 갑자대운으로 시작하는 관법으로 보면 평생 이인자에서 벗어날 수도 있는 기운도 들었으니 이는 홍 지사의 몫이다. 강성의 이미지가 아니라 덕성과 포용의 감성이 더 그리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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