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꽂샘추위에 점령당한 전쟁 비극 간직한 산경남일보 선정 100대명산 <48>거창 감악산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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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4.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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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일제 근무와 경제의 발전 등으로 레저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자연과 함께하며 운동을 즐길 수 있는 등산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100세시대, 건강한 삶과 윤택한 삶을 추구하는 세태변화에 맞춰 운동도 하면서 심신을 치유하는 ‘힐링’의 개념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분야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본지는 이런 추세에 맞춰 일찍이 경남일보 선정 100대 명산을 연재한 바 있다. 47회에 그친 시리즈에 이어 48회차 ‘거창 감악산’을 시작으로 매주 금요일자에 100대명산을 다시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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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릉지대에 형성된 습지, 아직 추위가 남았는데 초록의 숲이 싱그럽다.
(48)거창 감악산

한국전쟁 비극 간직한 아픈 우리 산

-회색빛에서 찾은 생명, 녹색의 습지

-가슴 뚫리는 고스락 조망권 명품

산 빛은 아직 회색이다. 산 아래에는 진달래와 벚꽃이 지천인데 고스락 주변에는 아직 봄의 기운이 미치지 않았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그나마 꽃망울을 터트렸던 진달래는 반쪽이 됐다. 반면 산수유를 닮은 생강나무꽃은 추위에 내성이 있는지 꽃망울 형태를 온전히 갖추고 있다.

▲감악산은 거창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원면과 남상면의 경계가 된다. 해발 951m로 그리 낮은 산군이 아니다. 다만 산의 접근 경로가 고지대여서 산행 거리와 시간이 다소 짧고 적게 느껴진다. 이번 산행은 약 7km에 3∼4시간이 소요됐다.

1000년 고찰, 연수사와 600년 수령, 은행나무가 유명세를 타고 있다. 거창군에서는 연수사를 중심으로 ‘물 맞으로 가는 길’ ‘고행의 둘레길’ ‘삼신도량 하는 길’ 등의 이름으로 등산로를 개발해 외지등산객이나 산꾼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의외로 습지가 많이 형성돼 있다. 참나무가 군락을 이룬 산 중턱 습지에는 신기하게도 주변 풀섶과 나무들이 온통 회·갈색인데 이곳에만 초록의 초지가 형성돼 있다. 오랜 세월 켜켜이 쌓여 형성된 이탄층 위를 걷다보면 마치 배를 탄 것처럼 울렁거린다.

무엇보다도 이 산은 한국현대사의 비극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50년 한국전쟁 후 부산까지 내려왔던 인민군이 퇴로를 확보하지 못해 하동 산청 거창의 큰 산으로 숨어들었다. 빨치산, 비정규군을 이르는 프랑스어 ‘파르티잔’에서 왔다. 다른 말로 게릴라 빨갱이와 맥을 같이한다. 1951년 2월 국군은 이 빨치산을 소탕한다며 이른바 ‘견벽 청야’ 작전을 수행한다. 피해는 양민들이 봤다. 즉 국군은 청연마을 사람들이 이들과 내통했다는 명분을 내세워 죄 없는 마을 주민들을 모두 끌어내 집단 학살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마을 앞 80여명이 사망한 비극의 현장에는 흔적은 없고 보존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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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 군락지와 늪지대가 있는 산길을 오르고 있는 등산객.
▲산행은 청연마을 삼거리→약수터 →연수사→물맞는 약수탕→무덤→중계소 해맞이 명소→감악산(전망대)→참·소나무평원(습지)→선녀폭포→도로이용→청연마을 삼거리로 회귀했다.

▲도로변에서 시작한다. 200여m 올라가면 샘물과 주차장. 시멘트 포장의 왼쪽 길을 300여m 따르면 또 다른 갈림길, 직진하면 임도로 산 정상까지 차가 간다. 주의 할 점은 이 갈림길에서 왼쪽 길을 택해야 연수사로 갈 수 있다.

연수사에 들어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일주문 옆 거대 은행나무, 수령 600년이 됐다는데 국내 최고령의 용문사 은행나무가 1000년짜리니 그 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경남도 기념물 124호, 높이 38m에 둘레 7m, 나뭇가지만 20m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이다. 성인 4∼5명이 팔을 벌려 감싸 안아야 될 정도로 크다.

은행나무에 얽힌 구전, 고려시대 때 젊은 여인이 자신의 유복자와 생이별하고 비구니가 됐다. 아들과 이별한 여인은 훗날을 기원하며 전나무와 은행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전나무는 1980년 강풍에 부러져 사라졌고 지금은 은행나무만 남아 있다. 천년의 나무를 심어 생이별의 아픔을 달랬던 모자의 애틋함이 전해지는 듯하다. 지금은 잎이 없는 앙상한 나목, 봄 여름 가을이면 푸르고 성성한 수형을 자랑한다. 수나무로 인근에는 400년 된 암나무가 있다. 절은 신라 애장왕(788∼809년)때 감악조사가 세웠고, 조선 벽암선사가 중수해 불사를 일으켰다. 푸른빛이 감돌아 맛깔 난다는 연수사 샘물은 시원할 뿐더러 가뭄에도 수량이 일정해 인기다.

▲연수사를 기준으로 양쪽으로 등산로가 나 있다. 왼쪽 등산로가 야외 샤워장 시설이 있는 물 맞는 곳 방향이고 오른쪽은 곧장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여름철 산행객들의 쉼터가 될 만한 물맞는 곳은 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곳을 지나면 오롯이 등산길이 시작된다.

초입 눈길을 끄는 것, 박힌 돌에 이름이 새겨져 있고 꽃이 놓여 있는 소나무. 수목장인 것으로 보이는데 생애 무슨 애환과 신산함이 있었었는가. 애잔한 생각이 드는 것은 ‘○ ○ 미’ 아무래도 젊은여인의 이름 같아서이리라.

조금 더 진행하면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이 정상으로 가는 길. 거리는 짧아도 한번쯤 휴식을 해야 할 정도로 가파르다.

▲고스락 부근 평평한 곳에 너른 잔디밭이 나오는데 이름 없는 무덤이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무덤가 둘레석이 왠지 정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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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나무꽃
출발 후 1시간 10여분이면 정상에 닿는다. 해맞이 장소로도 유명한 감악산 정상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문명의 이기, 휴대폰과 방송안테나가 어림잡아 5∼6개,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에 콘센트 건축물, 전망대라고 세워둔 팔각정까지 그야말로 치렁치렁 어지럽기 짝이 없다. 차가 예까지 올라온다. 아니온듯 스쳐가라는데 사람의 냄새가 진동한다.

조망은 일품이다. 북쪽으로 거창읍 전경이 아스라이 보인다. 반대편 활공장방향에는 멀리 지리산 덕유산이 조망되고 시야를 돌리면 가야산 일대 겹겹이 쌓여 있는 산군이 가슴으로 들어온다. 시원함과 뻥 뚫림, 명산을 붙일 이유다.

하산길, 워낙 급경사여서 빠르게 고도를 낮춘다. 등산로 곳곳에 로프를 설치해 놓을 정도로 경사가 심할 뿐 아니라 낙엽 밑에 얼음까지 숨어 있어 안전사고에 주의해야한다.

하산 후 30여분 만에 참나무 군락지를 만난다. 조림한 것인지 자연적으로 형성됐는지 모르겠으나 그 규모가 예사롭지 않다. 군락지 사이에 있는 구릉이 이채롭다. 늪지에 초록의 생명이 깃들어 있다. 산은 회갈색의 겨울나무들인데 초록의 풀잎이 싱그럽다. 몇 종류의 식물이 뿌리내려 마치 초록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하다. 땅속에는 물벌레 풀벌레의 움직임까지 보였다. 적어도 곡우(20일)가 지나면 싱그러움과 푸름이 온산을 뒤덮을 것이다. 구릉과 늪지대를 지날 때는 나무다리 위를 걷거나 바위 위를 걸어야 할 정도로 물이 많다.

감악산 일대는 지난해 여름 발생한 태풍으로 나무가 꺾이고 산사태가 나는 등 많이 훼손됐다. 등산로에 있는 선녀탕은 사라져 버렸는지 확인을 할 수 없었고 지금은 복구작업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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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2세 여아였던 정복순의 묘


▲ 1951년 2월 9일 청연마을 일대에는 평생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총소리가 땅을 울리고 하늘을 갈랐다. 국군 제 11사단 9연대 3대대는 작전지역에 있는 사람을 모두 총살하고 가옥을 불 지르는 견벽청야(벽을 견고히 하고 들을 깨끗이 함)작전을 수행했다. 군인들은 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눈 쌓인 논으로 끌고 나와 총기를 난사해 학살했다.

높은 산 중턱에서 평생 땅을 파먹고 살며 전쟁소식에 깜깜했던 청연마을 주민들은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야 했다. 거창 신원지역에서 일어났던 학살 중 처음으로 발생한 사건이었다. 여기서만 84명의 양민들이 숨졌으며 김운섭(당시 9세) 김운출(2) 정영자(10) 김미순(2) 김경순(4) 5명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그때의 비극을 전하고 있다. 이 외 10일 내탄마을 136명, 11일 박산계곡에서 527명 등 총 719명이 집단 학살당했다.

이들은 1996년에 제정된 특별법에 의해 45년만에 억울한 누명을 벗었다. 지난 12일에는 62주년 거창양민학살 사건 위령제가 열렸다.

귀농인으로 유명한 영화감독인 김재수(신원면 수동마을 이장)씨는 거창사건을 다룬 ‘청야’를 촬영하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후손들이 용서와 화해한다는 내용으로 올 하반기 개봉 예정이다.

산 아래 청연마을 묘역, 1949년 2월 출생해 1951년 2월 생을 마감한 정복순의 묘비가 있다. 4막 아닌 1막에서 생을 마감한 이 아이의 죄가 무엇일까. 묘비 앞 빛 바랜 조화마저 더욱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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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수령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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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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