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의 역학이야기> 특권의식
<이준의 역학이야기> 특권의식
  • 경남일보
  • 승인 2013.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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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心相)
지금 포스코에너지 왕모 상무의 대한항공 여승무원 가격사건으로 인터넷 및 신문 TV 방송매체에서 한참 시끄럽다. 결과적으로 그는 사표를 냈고 회사 측은 즉각 사표를 수리하였으며 피해 당사자 및 해당 항공사 그리고 국민들에게 사과문을 내고 일단락 지으려 한다. 왕모 상무의 행동과 생각에 대하여 한편으로는 개탄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괴물처럼 꿈틀거리고 있는 괴기한 욕망의 실체를 보는 것 같아 측은하기도 하다.

그는 지난 3월 그 어렵다는 대기업 임원이 되었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개인적으로는 정말 남들이 알 수 없는 수많은 인고(忍苦)의 세월을 거쳤으리라. 그리고 외적인 영광의 이면에는 항상 내적인 고통과 괴로움도 충동질하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런 내외적 갈등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여 엉뚱한 사람, 엉뚱한 곳에서 폭발시켜 스스로도 예기치 못한 반작용으로 결국 한달 남짓 되어 옷을 벗게 되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그는 일차적인 가해자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문화의 피해자일 수 있다. 우리 내면과 사회전반에 흐르는 왜곡된 가치에 전착(纏着)된 회생양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느새 ‘돈과 권력’만 세상살이에서 절대적인 가치라는 공통된 인식에 빠져있다. 전에는 그래도 ‘우리’라는 가치, ‘예의’, ‘체면’, ‘존중과 존경’, ‘더불어 사는 삶’ 등 무수한 가치들이 삶의 현장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하여 동네 밖에서는 술에 취하여 고성방가로 고함을 질러대다가도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 쥐죽은 듯 고요해지고, 어른 앞에서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도 얼른 등 뒤로 감추는 예의도 있었다. 이제는 이런 가치들이 모두 봄바람에 눈 녹듯 사라지고 있다. 담배꽁초 버리는 것을 나무라는 할머니를 벽돌로 쳐 죽이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돈과 권력만 거머쥐면 그 모든 것이 허용되고, 그 모든 가치를 깡그리 무시하여도 용서되고 용인되는 괴물 같은 사회로 변해 버렸다. 돈을 가진 자는 권력을 사고, 권력을 쥔 자는 돈을 상납 받는다. 그리하여 권력과 돈을 아울러 가진 자(者)들은 “내가 누군 줄 알아” 하는 안하무인에 빠지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경멸하는 ‘특권의식’을 갖게 된다. 나아가 이런 ‘계층구도’를 고착시키는 ‘계급화’에 은연 중 동조한다. 대기업 임원, 고위공직자, 다선 국회의원 등 돈과 권력의 핵심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세계에서 그들의 풍토를 만들어 간다. 하지만 그들의 풍토는 많은 사람들이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본받아야 하는 모범과 규범이 아니라 끼리끼리 해먹는 패거리 작당의 경계를 긋는 작폐일 뿐이다.

왕모 상무는 잠시 이런 무리에 젖어 한껏 들떴으리라. 개인이나 나라나 세계 각국이 사람보다 자본의 가치를 더 우선시하는 풍조 속에서 대기업 임원의 위세는 하늘을 찌르니 일개 항공사 승무원쯤이야 흔한 속말로 발가락 끼인 때만큼도 못하게 여겼으리라. 보통사람으로서는 돈이 비싸 앉지도 못하는 비즈니스석에 앉아 가방도 아무 곳에나 처박고, 안전벨트 매라는데 항의하고, 아침밥이나 죽이 없다니까 라면 끓여오라 하고, 끓여오니 짜다 뭐다 하며 계속 물리고, “기내가 너무 덥다”, “면세품 구입이 불편하다” 등 말도 되지 않는 행패를 부리다 막판엔 해당 승무원을 불러서 잡지로 얼굴 등을 때렸다. 이런 자들일수록 약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가혹하고, 강한 자에게는 한없이 설설 기며 아부한다. FBI조사에서 발뺌하는 비굴한 모습이 바로 이것이다. 동시에 정보시대의 속도도 한없이 무섭다. 좁은 공간 안에서 몇몇 사람들 사이에서만 있었던 은밀한 사실(facts)들이 이처럼 당장 빠른 속도록 넓게 알려져 네티즌들의 분노와 공감대를 불러일으켜 결국 회사도 공식사과문을 내고 왕모는 옷을 벗는다. 이게 정보사회이다.

미국 레이디온사의 스완슨(W. H. Swanson) 회장이 말한 32번째 웨이터 룰이 있다. “당신 앞에서는 갖은 아부를 떨지만 웨이터나 다른 사람에게 가혹하게 하는 놈은 결코 좋은 놈이 아니다.(이 법칙은 결코 틀리지 않는다.)” 눈앞에서는 굽실거리나 속마음은 배반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는 없다. 왕모씨의 전반적인 관상은 매우 좋은 편이지만 천중(天中) 부근의 이마선이 헝클어져 있으니 스스로 갈피를 잡지 못하여 마침내 영광에서 치욕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아무리 사주팔자·관상이 좋다한들 심상(心相)이 비틀려 있는데 그 영광이 오래 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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