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자세히 보아야 하는 풀꽃' 같은 사람
'오래, 자세히 보아야 하는 풀꽃' 같은 사람
  • 경남일보
  • 승인 2013.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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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준 (지리산고등학교 교사)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이다. 이제 교직경력 3년차인 내가 학교라는 공간에서 생활하다보면 참 이 ‘풀꽃’이라는 시는 은은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군대에서는 소대장으로, 학교에서는 선생님으로 지금껏 만나온 이들은 족히 천여명은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교육하는 일을 하고 살아오면서 참 사람들은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 꽃들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보는 즉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수선화나 튤립, 장미 같은 아름다움을 지녔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길가에 막 피어 있는 풀꽃 같이 그냥 봐서는 쉽게 아름다움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학교에서 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냥 보기만 해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학생들이 있다. 수선화, 튤립, 장미 같은 학생들이다. 하지만 어디에서 예쁜 모습을 찾아야 할지 알 수 없는 학생도 있다. 이런 학생들은 길가에 막 피어 있는 풀꽃 같은 학생들이다.

내가 맡은 우리반에도 풀꽃 같은 학생이 있다. 공부라는 것에 지나친 강박관념을 지닌 학생이다. 늘 불안해하는 성격인데다 자신의 성적, 이익만을 생각하는 마음이 지나치게 큰 학생이었다. 어느 날 이 학생은 고3이 되는 겨울방학에 진지한 면담을 신청해 왔다. 자신이 이젠 이렇게 긴장된 삶을 사는 것이 견디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이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동안 이 학생의 행동이 왜 이럴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었다. 이 학생은 어렸을 때부터 경제적인 문제로 부모님은 늘 다퉜고 심지어는 아버지께서 가정폭력도 일삼았다고 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어머니는 늘 어린 여동생과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네가 공부를 잘해서 성공하는 길이라고 이야기하셨다고 한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이 학생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밉기만 했던 그 학생의 행동들이 이제는 ‘사랑할 수 있는’ 행동들로 보였다. 이 학생과의 일이 있은 후로 나는 미운 마음이 많이 생기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마음 속으로 ‘오래, 자세히, 보아야 하는 풀꽃’ 같은 학생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나는 ‘풀꽃’ 같은 학생들을 보면서 ‘풀꽃’ 같은 학생들이 지닌 비밀스러운 ‘사랑스러움’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수선화와 튤립, 장미같이 즉시 보아서 예쁜 꽃들은 모두에게 보이는 아름다움을 지녔지만, 길가에 핀 풀꽃들은 오래 본 사람, 자세히 본 사람에게만 보이는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그 아름다움이 이 풀꽃이 지닌 ‘사랑스러움’의 비밀이라고…. 오늘도 나는 교실에서 막 피어난 풀꽃들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오랫동안 지켜볼 때 번져나는 은은한 사랑스러움의 향기를 느끼며 행복한 교직생활을 하고 있다.

이예준 (지리산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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