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잔치 속 아찔하게 반짝이는 산맥의 멋
초록 잔치 속 아찔하게 반짝이는 산맥의 멋
  • 최창민
  • 승인 2013.05.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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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일보 선정 100대명산 <52>영남알프스 운문산

▲암릉 치마바위와 초록 수리봉이 어우러진 운문산의 위용. 등산객이 카메라에 풍경을 담고 있다.
영남알프스는 밀양 양산 청도 등에 걸쳐 있는 1000m이상 되는 산군을 일컽는다. 정리하면 밀양 쪽 운문산에서 가지산 신불산 재약산 천황산까지 총 연장 40km, 산행시간은 20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산악인들은 대개 2구간으로 나눠 석골사에서 올라 운문산∼신불재까지, 신불재∼천황산까지 산행한다.


영남알프스는 육산과 암릉 기암절벽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는 오래 전 화산활동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강이남 최고의 경치’, 혹은 ‘지리산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며 등산인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전체면적이 약 255㎢에 달하는 광활한 면적을 자랑하고 가을이면 아침과 저녁 무렵, 황금빛의 억새가 파도처럼 일렁이는 장관을 목격할 수 있다.


신불산과 취서산(영축산) 사이의 평원에 198만3471㎡, 신불산과 간월산 사이의 간월재에 33만578㎡, 고헌산 정상 부근에도 66만1157㎡ 의 억새 군락지가 형성돼 있으며, 특히 재약산과 천황산 동쪽의 사자평은 413만2231㎡ 의 넓이를 자랑하고 있다.


경남일보 선정 100대명산은 과거 가지산 연재에 이어 이번에 산군의 첫 머리인 ‘운문산’과 중간에 억새가 장관인 ‘신불산’ 그리고 마지막으로 용솟음 친 ‘재약산’(천황산)을 잇따라 연재할 예정이다. 먼저 이번 주에는 운문산을 소개한다./편집자 주

 

# 운문산(1195m)은 경북 청도군 운문면과 밀양시 산내면 경계에 있다. 영남알프스 산 군중 최고봉인 가지산과 함께 최고의 경치이자 대표적인 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자 ‘구름 운(雲)자’를 써서 ‘구름과 안개가 많은 산’이라는 뜻이다. 정상부는 육산으로 돼 있고 4부 능선을 중심으로 옹골찬 암릉이 드러나 있다.


최근 국토지리정보원에서는 영남알프스 산군에 대한 높이 측정을 다시 해 최고봉은 가지산, 운문산이 2번째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1188m였으나 지금은 1195m로 높아졌다. 아니 산이 높아진건 아니고 단순히 삼각점 위치를 잘못 선정한 때문이라고 한다.


이 산에는 동의굴이라는 얼음굴이 하나 있는데 최소한 이 일대 주민들 사이에선 허준이 류의태를 해부했다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 산행은 조선시대 명의 류의태와 인연이 있다는 석골사부터 시작해 상운암→운문산→딱밭재→범봉→석골사로 원점 회귀했다. 약 10km에 휴식시간 포함해 5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이외 석골사에서 출발해 운문산 억산으로 가거나, 반대로 가지산과 연결해 산행하는 예가 많다. 북쪽 운문사방향에 개발된 등산로가 많이 있지만 2008년부터 자연휴식년제가 시행됨으로서 수시로 폐쇄되는 경우가 많다.

 

▲석골사 앞 계곡의 2단폭포

 

# 등산로 초입은 석골사 주차장. 앞 계곡에는 2단으로 된 규모가 꽤 큰 폭포가 하나 있어 여름철 피서객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상운암까지는 이 계곡을 따라 오르면서 건너기도 하고 다시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닿는다. 산에 들면 거대한 참나무 군락지가 막아선다. 전날 내린 비로 생명수의 축복이 시작됐다. 등산로는 깨끗하고 참나무 이파리의 초록은 더욱 짙어졌다. 빼곡하게 들어 선 참나무군락은 하늘을 막아버렸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아침햇살이 좋다. 계곡의 청류(淸流)는 민요가락에 몸을 실은 무용수의 춤 사위인 듯 흔들린다. 40∼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 일행의 재잘거림도 새소리와 어울려 싫지 않게 들린다.


참나무 군락지를 벗어나면 30여분 만에 전망 좋은 바위에 설수 있다. 산 아래쪽에서 산세를 휘둘러 볼 수 있는 쉼터이자 포인트. 산허리에 불쑥불쑥 솟아난 암석군의 경관이 빼어나다. 이 산이 과거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됐다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물들이라고 한다. 왼쪽에 솟은 수리봉은 수리류가 서식해서 부르는 흔한 이름의 봉우리, 오른쪽 치마바위는 치마처럼 생겨서다. 선인들은 산 이름과 바위이름을 이렇게 편하게 지었다.


이 암석군과 정상부근을 제외하고는 온통 초록 이불을 덮어놓은 듯하다. 초록세상은 계곡과 대지를 물들이고 사람들의 마음까지 홀리게 한다. 40여분 만에 닿은 갈림길에서 집채만한 크기의 정구지 바위에 닿는다. 바위 위에 정구지(부추)처럼 생긴 난이 자생하고 있어 그렇게 부른다는데 아래에선 잘 안 보일뿐 아니라 올라갈 수 도 없다. 직진하면 상운암, 운암산으로 가고, 오른쪽 산에 붙으면 동의굴과 함박산을 거쳐서 운암산으로 간다.

 

# 허준이 류의태의 시신을 해부했다는 동의 굴 내부는 넓고, 안에는 시신을 안치할 수 있는 제단 같은 암반이 놓여있으며 실제 동굴 앞에 서면 한여름에도 찬 기운이 돌뿐 아니라 안팎의 기온 차로 주변에는 안개가 형성된다고 한다. 시신의 부패를 막기 위해 이런 곳에서 해부를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하지만 동의굴에 대해선 말들이 많다. 알려진 대로 소설 동의보감에 등장하는 허준은 류의태라는 인물보다 약 200년 전의 인물로, 시대적으로 류의태가 허준의 스승이 될 수 없다. 이름이 비슷한 유이태는 거창 출신으로 산청지역에서 전염병 퇴치를 위해 노력하면서 서민들의 아픔을 함께한 명의이다.


그렇다면 이 굴에서 해부를 했다는 인물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에서 시신을 해부했다는 기록은 한참 뒤인 임진왜란 당시 호기심 많은 한 양반이 그랬다는 소문이 이익의 성호사설에 전해진다고 한다.


따라서 이 곳 동의굴은 구전과는 달리 사실적 뒷받침이 없어 혼란스럽다. 실상 허준의 스승은 소설동의보감에서 경쟁자로 등장하는 양예수라는 것이 정설이다. 어찌됐건 이 산을 비롯한 인근 밀양 얼음골에는 이런 애매한 전설을 가진 동굴이 있다.

 

# 상운암으로 가는 오름길은 비교적 편안하게 이어지다가 돌탑을 전후로 급경사다. 자갈들이 등산로에 굴러다녀 발목부상의 위험이 있어 주의가 필요한 구간이다. 1시간 40여분만에 상운암에 닿는다. 입구에 있는 샘물은 오름길에 지친 목마름 탓인지 토종 꿀맛에 비할 바가 아니다. 상운암 스님은 오가는 등산객이 반가운 듯 지난해 가을에 따낸 마가목 열매로 차를 끓여 탁자에 올려놓고 한잔 하고 쉬었다 가기를 권한다. “이곳에 사시면 좋겠습니다.” 그랬더니 “경치와 공기가 좋다”며 밝게 웃었다. 오가는 사람들이 귀찮을 법도 한데 사람좋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통나무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의자와 평상, 별로 가진 것 없는 소탈함에 마음이 쏠리는 건, 밑바닥에 깔린 원시 본능의 자극이리라.

 

▲운문산과 딱밭재 중간에서 만날 수 있는 암릉. 발바닥이 간지럽고 눈은 시리다.


상운암에서 운문산까지는 30여분이 더 걸린다. 능선에 올라선 뒤, 오른쪽 운문산으로 갔다가 딱밭재 방향으로 다시 되돌아와서 억산으로 갈수 있다. 종주하는 산꾼들은 돌아오지 않고 가지산으로 간다.


운문산 정상에 서면 가슴이 확 트이고 마음도 헤풀어진다. 정면 삼각뿔처럼 생긴 암반에 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곳은 가지산 정상이다. 이 기준점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신불산 재약산 천황봉까지 마루금이 유장하게 흘러간다. 여기가 지리산에 버금가는, 한강 이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태고의 원시림, 하늘의 평원, 영남의 산, 우리산이다. 산우 일행은 이 알프스의 산줄기를 뒤로 하고 아쉬움을 삼킨채 딱밭재 억산방향으로 발길을 되돌렸다.


운문산 일대에는 멸종위기종인 산작약 솔나리 무산쇠족제비 등 514종의 식물과 수달 삵 하늘다람쥐 담비 벌매 원앙 소쩍새 등 1076종의 동물이 서식 분포한다. 당국에서는 이 일대를 보전하기 위해 생태 경관 보전지역으로 지정하고 등산객의 협조를 당부하고 있다.


운문산에서 딱밭재 구간에 또 한번의 요동치는 암릉 구간을 만난다. 육산을 뚫고 불쑥 솟아 오른 형태로 암릉과 비럭 중간 중간에 생명력 강한 수목이 뿌리를 박고 있다.


발길 닿는 곳마다 아찔하고 눈길 가는 곳마다 시원하다. 경치에 취하면 발밑이 오글거리고 발밑을 신경 쓰면 풍광을 놓치기 일쑤다. 흔한 말로 가시 돋친 장미처럼 아름다운 만큼 위험하니 애가 탄다.


높은 벼랑을 로프로 이용해서 내려가야 하는 험한 구간이 있어 여성 등산인이나 어린이들은 아예 이 구간을 우회해서 가는 것이 좋다.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지나온 상운암이 언덕에 기댄 둣 살포시 앉은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 암릉구간을 지나고 나면 석골사로 바로 하산하는 길이 나온다. 자칫하면 하산 길로 연결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딱밭재까지는 30여분 정도 더 걸린다.


재를 중심으로 등산로는 비교적 부드러운 육산, 범봉까지 유장하게 연결된다. 오른쪽으로는 팔풍재로 연결된다. 직진하면 딱밭재를 거쳐 억산으로 갔다가 석골사로 하산할 수 있다.


아담한 작은 사찰 석골사에는 부처님오신 날을 앞두고 50년 수령 주목에다 특이한 형식으로 연등을 매달아 놓았다. 절집 앞마당에 눈길을 끄는 제단이 하나 있다. 생명이 잉태했으나 이런 저런 이유로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떠난 아이의 영혼을 달래는 참회의 제단이다.


아가야 미안하다/탐진치(욕심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어둔 마음/세상고락 헤매느라 너를 잠시 잊었구나/부모자식 인연으로 어미뱃속 맺은 인연/이런저런 사정으로 햇볕한번 보여주지 못한 잘못/지극정성 참회하니 맺힌 원결 모두 풀고/다음 생애 또 만나면 웃으면서 보자꾸나/아가야 미안해/

 

▲유장한 영남알프스 마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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