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준 (지리산고등학교 교사)
교사로 살면서 가장 기쁜 순간은 아마 “선생님 생각나서 문자했어요”라는 연락을 받을 때인 것 같다.전혀 생각하지 않고 지내다가 가끔씩 예전의 제자에게 연락을 받을 때면 여간 기쁘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잊지 않아 줬다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또 자신의 삶에 고민이 있어서 오랜만에 연락해온 경우는 더욱 고맙다. 어쩌면 교사라는 직업은 매일 새로운 학생들을 먼저 사랑하고 떠나보내며 나를 잊지 말아줬으면 하는 바람을 끝까지 지니고 사는 직업일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 첫 교직생활을 시작한 학교에서 함께했던 제자에게 연락이 왔다. 이 학생은 그때에도 나를 참 잘 따라 주었는데, 최근에 너무 힘든 일을 겪어서 내가 참 보고 싶었다고 한다. 당시 이 학생은 다른 반 여학생과 교제를 시작했고, 최근까지 이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 학생은 대학입시에 실패했고, 그 여학생은 명문대 간호학과에 합격하게 된 것이다. 결국 그 여학생은 다른 대학교 선배가 좋아졌다고 하며 떠났다고 한다.
죽을 만큼 힘든데, 내 생각이 나서 연락을 했다고 하는 이 학생을 위해 나는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과 그가 겪을 엄청난 고통에 비해 너무도 초라한 위로를 해주는 것 외에 달리 해줄 것은 없었지만 힘들 때 나를 생각해주고 찾아준 것이 참으로 고맙고 기뻤다. 그리고 그 학생이 연락을 마무리하면서 남긴 말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고등학교 때 입시 때문에 제일 힘들었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재밌는 추억이 가장 많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때 선생님이 함께 계셔서 참 좋았어요.” 아직도 나는 이 학생의 가장 행복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 속에 살아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에게 가장 힘들지만 행복하고 특별한 일생의 단 한번의 시간 속에 계속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까. 가끔씩 떠난 제자들에게서 ‘그때가 그리워요, 보고 싶어요 선생님.’ 이런 연락을 받을 때면 잔잔한 행복감에 사로잡히고, 그들의 기억속에 자리 잡은 내 자리가 바로 나의 ‘꽃자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의 그리움은 내가 그때 후회없이 이 학생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반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떠올리는 그 그리움의 자리가 내게 가장 큰 기쁨인 나의 ‘꽃자리’인 것 같다.
매일 입시문제로 진로문제로 아파하며 흔들리는 청춘들과 함께하며 후일에 그리워하게 될 우리의 꽃자리를 찾기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시방 네가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라는 구상 시인의 시를 떠올리며 또 다른 제자들의 기억속에 살아갈 나의 꽃자리를 기대해 본다.
이예준 (지리산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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