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주 변호사의 법률이야기
김용주 변호사의 법률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13.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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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저 너머에…
올해 초쯤, 사건 때문에 하동읍에 있는 하동군 법원으로 가니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입구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는 지인의 아들에게 700만원을 빌려줬지만 돈을 받지 못해 소송을 냈다고 했다. 가뜩이나 없는 살림에 700만원 받자고 변호사까지 선임할 수 없어 혼자 재판을 하려니 몰라서 힘들긴 하지만 그냥 어떻게든 해보는 수 밖에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하동군 법원이 있는 법원 주변에는 법무사 사무실은 몇 곳이 있었지만 변호사 사무실은 없었다. 이 법원에서는 이날 하루 동안 대여금이나 물품대금, 공사대금, 손해배상 청구 등 70여건의 소액재판이 열렸다. 하지만 대부분 변호사 없이 당사자들이 ‘나 홀로 재판’을 했다. 그렇다 보니 법률지식이나 이해가 부족해 재판이 지연되거나 차질이 빚어지는 경우가 눈에 띄었다.

대여금반환 소송을 낸 50대 후반의 한 남성은 “채권 추심을 위임받았더라도 채권 양도 절차를 별도로 밟아야 한다”는 판사의 말에 “법원에 오기 전에 법무사에게 문의를 했는데 위임장만 제출하면 다 끝난다고 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판사는“법무사는 재판부가 아닙니다”라며 공손하지만 무겁게 말했다.

평일 낮에 열리는 재판이어서 원고나 피고 중 한쪽이 불출석한 경우도 많았다. 판사는 ‘쌍방 불출석’처리를 하겠다고 설명을 했지만 일부 당사자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사전에 제출하라고 한 관련 증거자료나 증빙서류 등에 제출하지 않고 판사 앞에서 무작정 자신의 얘기만 늘어놓으려고 하는 당자사들도 눈에 띄었다.

폭행을 당하였다며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한 남성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영수증이나 소견서 같은 건 버려서 없다”며 자신의 사연을 늘어놓았다. “현금으로만 지급해서 증거는 없지만 나는 분명 사채를 이미 다 변제했다”고 주장하는 젊은 여성도 있었다.

시· 군법원 재판에서 변호사 선임 없이, 법무사의 도움까지도 받지않고 ‘나 홀로 소송’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래도 소송물 가액이 작으면 그 비율이 높다. 소장이나 답변서 작성에서 법무사의 도움을 받고 이후 소송의 진행에 따른 준비서면을 스스로 작성해 제출하기도 한다.

당사자들이 법률용어 등 기본적인 지식이 부족해 재판에 차질을 빚는 경우는 아주 많다. 소송에서 주장하려는 사항을 미리 제출하지 않고 법정에서 모든 사실을 진술하려고 하는데 그 진술 자체가 요령이 없어 재판 진행에 차질을 가져 오기도 한다. 꼭 필요한 증거를 신청하지 않거나, 신청하는 방법을 알지 못해 재판이 지연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관련 형사사건 등의 증거조사 방법을 알지 못해 증인을 신청하고 신문사항을 제출하지 않아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소액사건, 특히 시· 군법원 사건은 가능하면 판사가 직권을 발동해 심리하고 증거조사도 직권으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양 당사자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한쪽 당사자를 위해 할 수 있는 행위는 제한돼 있다. 더욱이 당사자들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기만 하면 판사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리라고 믿는 경우가 많아 재판 진행이 쉽지 않다.

아쉽지만 이러한 모습이 우리나라의 시· 군법원의 현주소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까? 진실은 저 너머 아득히 먼 곳에 있어 보인다.

/김용주 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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