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계백 (진주상공회의소 회장)
가족의 안녕과 국가의 번영을 비는 소망등(所望燈)이 만개를 넘었으니 천지신명의 가호가 하늘을 찌른다. 명실공히 국내 최고의 문화축제로 인정하는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선정된 것은 당연한 일이며 우리 지역의 자랑스런 문화자산이다. 더 나아가 유네스코에서 선정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됨이 마땅할 것이다.
이 진주남강유등축제의 이루어짐이 하루아침에 된 것은 아니요, 일년 이년에 된 것도 아니며 십년 이십년도 아닌 오십년이 더 걸린 것이다. 1592년 임진년 전투에서 4000명이 안 되는 관군이 2만 명이 넘는 왜군을 맞아 대승을 거두었으니 바로 임진대첩이고 이듬해 4만 명이 넘는 왜병을 맞아 3000명도 안되는 관군과 6만5000명의 민간인이 혼연일체가 되어 실로 처절한 전투를 벌이다 모두 순사(殉死)한 진주성 싸움은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려운 거룩한 충절의 역사이다. 성 밖의 우군과 연락을 취하기 위해 하늘에는 연을 날렸고 강에는 등을 띄웠으니 이런 연유에서 시작된 것이 진주남강유등축제이다.
우리나라 지방문화제의 효시인 진주개천예술제 행사가 진주에서 시작되고 유등행사도 같이 시행되었다. 진주시민은 물론이요 전 학교가 동참하였다.
역사적 고증도 미약하고 본받을 사례도 없던 것을 손수 만들고 다듬어 등을 만들었으며 오랜 세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개선해 왔던 것이다. 흐르는 유등(流燈)에서 시작하여 고정된 정등(停燈)이 등장하였다. 학교별로 직장별로 머리를 짜내어 역사성, 지역의 특성, 아름다움과 품격을 갖춘 작품을 만들려고 부수고 다듬고 보태고 덜고 하는 작업을 수십 번 반복하여 오늘의 등이 만들어진 것이며 해를 더해가며 계속 개선되고 있는 것이다.
또 축제기간에 전 시민이 참여하여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비는 소망등을 갖추게 되니 촉석루 앞 남강을 등으로 가득 채우게 된다. 하늘의 불꽃놀이와 어우러지는 장관은 실로 선경(仙境)이라 할 것이다. 이처럼 엄청난 산고를 겪은 산모처럼 힘든 과정을 감내하고 만들어진 대한민국 대표축제를 수도 서울에서 모방 전시한다고 하니 실로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일이다.
문화는 공유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순서가 있고 룰이 있는 것이다. 엄청난 창작품을 창작자의 뜻에 반하여 마음대로 베낀다면 이것은 해적행위가 아니겠는가. 어디 그뿐이랴 “서울이 하는데 우린들 못하랴”면서 강이나 호수를 낀 도시마다 너도 나도 등축제를 한다면 진주 유등축제는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축제는 그 만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가져야 의미가 있다. 단순히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축제를 여는 것이라면 차라리 꽃을 갖다 놓고 보여주는 게 더 낫지 않겠는가. 유등축제가 보고 싶으면 진주로 오면 될 것이며 지방 관광업계도 활성화시키고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지방문화도 살릴 것이 아닌가.
아흔 아홉석 가진 부자가 한 석 가진 옆집 재물을 탐내는 식의 고약한 졸부의 속성을 드러내지 말고 서울시는 등축제를 당장 취소하여 가진 자의 넉넉함을 보여주는 큰 도시가 되기를 바란다.
하계백 (진주상공회의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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