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성 기자
하지만 우리사회는 오랜 시간 ‘노동’이라는 단어에 경제 주체로서의 긍정적 의미보다 불순세력이나 경제 걸림돌 등 부정적 의미를 더 부여해 왔다.
경찰에서도 그 잔재는 남아 있다. 사건을 처리할 때 피의자와 피해자의 직업을 표기한다. 경찰이 분류하고 있는 직업란에는 회사원, 자영업, 종업원, 무직, 농업 등 다양하다. 특이한 것은 ‘노동’이라는 직업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경찰은 공사장 인부나 막일을 하는 사람들의 직업을 ‘노동’으로 표기하고 있다. 분명 이들도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들이지만 노동의 의미를 축소하고 왜곡됐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폭넓은 의미의 단어를 한정된 직업에(또는 사회적으로 기피하는 직업에) 사용한다는 것은 경찰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노동을 전근대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된다.
지난 2010년 경찰청은 부산에서 일어난 여대생 납치강도 용의자 공개수배에서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노동자풍의 마른 체형’이라고 표현해 노동계의 반발을 산 적이 있다. 당시 민주노총은 노동자를 하찮은 존재, 남루한 이미지, 사회적 낙오자, 잠재적 범죄자 등 매우 부정적으로 규정하고 폄하한다며 항의했다. 이에 경찰청은 “폄하 의도가 없었다”며 유감을 표하고 이후 공개수배 전단에서 ‘노동자풍’이라는 표현을 없앴다. 당시 경찰청의 빠른 시정조치는 환영받을 일이었다.
하지만 앞서 지적한 것처럼 내부문건에서는 여전히 ‘노동’이라는 단어를 왜곡해 사용하고 있다. 단어를 사용할 때 나쁜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자꾸 쓰게 되면 그 의미가 왜곡될 수 있다. 국민 대다수는 노동자다. 또 경찰 내부에서는 터부시되고 있지만 경찰 역시 노동자다. 이제는 노동이라는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고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직업분류에 노동 대신에 ‘일용직’, ‘막노동’ 등 직업에 맞는 단어로 바꾸는 것을 제안한다. 비록 단어 하나일 뿐이지만 국가기관이 노동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존중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또 국민에게 다가가겠다고 표방해 온 경찰의 의지와도 어울리는 일이다.
강진성·정치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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