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 (8)
<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 (8)
  • 경남일보
  • 승인 2013.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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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는 사람들 지키는데 목숨까지 바치겠다고 핏대 세우며 동정표를 모아 시장이 되고부터 완전히 변절했구나 하는 생각에 또 놀아났구나 싶었다.

“남을 비난해 인기를 끌어 표를 모았지만 이제부터 너도 욕할 자격 없고, 욕먹을 일만 남았어. 니가 죽일 놈이라 욕했던 그들보다 니가 더 나쁜 놈이야.”

준호는 평소 힘없는 사람들을 지키겠다고 앞장서서 사회정의를 부르짖던 외침이 몇 달 만에 똥개 개 짖는 소리로 되울려 눈알이 시렸다.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떨리는 손끝으로 잔을 들어 한 입에 틀어넣었다.

“사람이 그렇게 없나? 저런 기 시장 하그러.”

“절마도 서울 사람 아니라며?”

“저런 거 때문에 욕은 서울사람들이 다 먹지. 서울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들.”

고향을 찾아와서는 표를 얻기 위해 넓게 보면 같은 고향이라고 다정하게 미소 짓더니 권력을 쥐고 나니 배신했다.

“호로자슥, 뒤통수치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세상인지 오히려 약탈자 서울이 큰소리치며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나서서 정의를 말하는 어른은 하나도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가진 자가 횡포를 부리기 시작하자 조잡한 권력이 비열하게 표를 얻으려고 합세하고 돈벌레들이 벌떼처럼 덤벼들기 시작했다. 힘없는 사람들은 꿈을 약탈당하고도 쓴 소주를 삼키며 분노하지만, 잘났다는 인간들은 오히려 힘없는 사람을 흘기며 은근히 깔보기만 했다.

“더러번 세상!”

“저것들, 콧대를 납작하게 해줄 방법이 없을까?”

술기운이 오른 준호는 민지에게 잔을 건네며 이마 주름을 잡고, 입술에 묻은 소주를 닦으며 술을 따랐다.

“양아치들, 돈으로 사서 전리품으로 과시하며 예술가 행세하는 잡것들.”

유등 예술가를 꿈꾸고 있던 민지의 예쁜 입에서도 쌍소리가 터져 나왔다. 불의를 보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민지의 눈빛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여자가 욕을 하는데… 저런 게 살아있는 아름다움.”

“한판 붙자. 시청 앞 서울광장에 촉석루 유등 세우고 진을 치자.”

옆 테이블 젊은 친구들의 눈동자에서 분노가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행동하지 않는 정의는 불의라고 외쳤던 그 인간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약자에게 횡포 부려도 무방하다는 황당한 정의를 보여주고 있었다. 준호는 힘이 곧 정의라는 인류 역사가 남긴 어처구니 정의가 반복되는 꼴을 보고 더러운 세상이란 걸 배웠다.

“치사한 것들하고 같이 싸울 수도 없고, 정말 지저분한 놈들…”

민지가 소리치자 옆 테이블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예술이 뭔지도 모르는 쌍놈들과 상대하자니 기가 찰 노릇이다. 무식한 것들이 무대포로 나오면 방법이 없어. 같이 싸우는 사람만 지저분해지는데… 그냥 둘 수도 없고, 강탈해 놓고 자기꺼라 우기는 조폭들 수법에 상대하자니 더럽고… 썅~!”

준호는 한순간 마음속으로 존경했던 수염의 가려진 위선에 구역질이 났다.

“당선만 되면 없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마구 짓밟아…”

울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여기저기 술잔을 탁자에 내리박는 소리가 났다.

“더러번 새끼들, 확 구마…”

“아저씨, 당장 서울 갑시더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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