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 (10)
<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 (10)
  • 경남일보
  • 승인 2013.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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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빛바랜 봉황이 날갯짓하는 상상을 하며 소주로 쓰린 가슴을 달랬다.

“뜻도 모르고, 개나 소나 봉황을 품으니…”

개나 소나 하는 말을 들은 민지는 큰소리로 웃으며 맞다고 찬동하고는 빈 잔을 준호 앞으로 내밀었다.

“짐승보다 못한 것들. 야, 준호! 한 잔 따라봐.”

언제나 말동무가 되어 주는 민지에게 술 따르는 건 행복했다.

“더럽게 마셔버리자, 디비진 세상… 이기심은 창궐하고, 막하는 시대를…”

믿었던 놈들에게 발등 찍힌 오늘은 취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약탈한 걸 보면 구역질이 나서 침을 뱉는 기본 양심은 있어야지, 인간들아~!”

준호가 따라 주는 술을 좋아하는 민지는 흐뭇한 표정으로 타이르듯 말했다.

“서울 등축제가 지저분해지겠네. 보는 사람들 기분도 생각해야지. 더럽기는…”

한 번에 잔을 비운 민지는 준호 코앞에까지 빈 잔을 밀었다. 술을 따르며 치켜뜬 눈으로 준호를 노려보는 민지의 눈빛이 형광 빛을 발했다.

“준호야, 뭔지 모르지만 내가 도울 테니 저것들 콧대를 납작하게 해버리자.”

고향은 아니지만, 아니 고향과는 아무 상관없는 힘없는 사람들 꿈을 약탈해가는 더러운 꼴은 보고 있을 수 없었다.

다음 날 새벽, 준호는 달동네 경로당으로 달려갔다. 빛바랜 회색 천막 입구를 들추고 낡은 봉황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한참을 생각했다. 늙은 장닭이 날면 사람들이 비웃을게 뻔했다.

명함에 금박 봉황을 그려 넣고 득세하던 세도가들이 봉황의 뜻에는 관심 없고, 축제 때 사람들 모여들면 자신들 입지를 높이는 데 사용했던 늙은 장닭이 하늘을 날아본들 오랜 꿈을 기다리는 동네사람들 가슴의 상처는 아물지 않을 것이다. 낡은 장닭 날개를 한참 동안 바라보며 상상했지만 여기저기 찢어진 날개로는 결코 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준호는 어떻게든 축제에 참여해서 희망 잃은 낡은 도시민의 가슴에 소망의 불씨를 살리고 싶어 봉황의 꼬리를 잡고 이리저리 살폈다.

“준호야, 그서 뭐 하노?”

동네 아저씨가 입에 담배를 물고 의심의 눈초리로 위아래 훑어보았다. 빛바랜 봉황을 안타깝게 한 번 더 쳐다본 준호는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때면 자신도 모르게 사투리를 쓰게 되고, 말이 잘 통하고, 듣기도 좋았다. 준호는 말이 통하는 동네 아저씨에게 물었다.

“올해… 축제 참여 안 합니꺼?”

“치아라, 뭔 소리 들을라꼬.”

버럭 화를 낸 아저씨는 누가 엿듣는 사람이 없나 싶은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봉황을 몇 군데 손 봐서…”

“동네사람들 난리칠 끼다. 니도 알다시피 몇 년 전에 얼마나 욕 뭇노. 실컷 고생하고… 내가 동네에서 쫓겨 날 뻔했다 아이가.”

당시 동네사람들을 설득해서 축제에 참가할 돈을 모금하고, 여기저기 손을 벌려 도움을 청하는데 앞장섰던 아저씨는 세도가들이 모금한 돈으로 술이나 퍼마시는 판에 돈이 모자라 겨우 장닭을 만들었다는 책임을 혼자 뒤집어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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