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11)
<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11)
  • 경남일보
  • 승인 2013.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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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 있고 난 뒤 동네 사람들 희망이 없어진 것 같아예.”

아저씨는 담배를 깊이 빨아들여 한숨과 함께 묵은 아픔을 연기와 같이 뿜어냈다.

“고마, 치아라 쿤께, 어른들이 난리칠 끼다. 동네 우사시킨다고.”

“왜 버리지도 않고 이대로…”

“그야, 우리 동네 상징인데 버리면 써나.”

동네 아저씨는 눈을 부릅뜨고 어깨 힘을 주며 아랫배를 쑥 내밀었다.

“앙금은 풀어야지예. 당시 동네사람들이 잘못한 건 아니지예.”

“쭈겐은 동네가 두 패로 갈라져 싸웠다 아이가. 정치하는 잡것들 때문이지만서도, 다시 나가모 대판 싸움 날 끼다.”

아쉬운 듯 낡은 봉황의 이마를 어루만지는 아저씨의 표정은 진지했다.

“싸워서라도 풀건 풀어야지예. 한 동네 살면서 말도 안하고 뭐하는 짓입니꺼. 아저씨가 동네 어른들 축에 드니까 앞장서면 도울 겁니더.”

혹시 다친 데는 없는가 싶어 여기저기 애지중지 간직하고 있는 보물 살피듯 자세히 살폈다.

“그야 그러타만서도…”

“다시는 동네 상징 앞에서 싸우지 않을 겁니더. 동네 사람들 힘을 합쳐…”

“겁나는 기라. 안 그래도 살기 힘든 사람들이라 동네가 자꾸 쭈굴어들고…”

“동네 어른이라면 욕을 먹을지언정 할 일은 해야지예. 갈라진 동네 인심을 모른 체 하면 두고두고 원망 들을 겁니더.”

은근히 협박하는 젊은 놈을 흘겨본 아저씨는 담배를 물고 빛바랜 봉황을 힐끔 쳐다보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잠시 먼 하늘을 올려다보던 눈길을 거두고 곁눈질을 했다.

“우짜낀데?”

“축제 시나리오 만들어 아저씨 사무실로 갈께예.”

아저씨 눈에서 광채가 스쳤지만 차마 부추길 수 없는 동네 분위기 때문에 못이기는 척 입맛을 다셨다.

“모르것다…”

민지를 만나러 가는 준호의 가슴속에 미지의 설렘이 일었다. 공부하느라 바쁘지만 그래도 개천예술제가 다가오면 왠지 설레던 학창시절과 민지와 함께 좀 더 직접 참여했던 대학시절의 많은 추억이 떠올라 힘이 났다.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몇 날 며칠을 준비하며 꿈에 부풀었던 시절로 돌아간 준호는 그 시절에 무궁무진했던 상상을 다시 즐기고 있었다. 매번 똑같은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비슷한 이야기를 해본들 지루하기 때문에 대학 동아리 시절 지어낸 이야기를 하며 민지와 밤을 지새운 그 시절처럼 올해 축제는 좀 더 좋은 시간이 되도록 준비하고 싶었다.

일요일 오전 진주성문 앞에서 만난 민지의 손을 잡고 유유히 흐르는 남강을 잠시 보다 성문 안으로 들어가며 물었다.

“나쁜 놈들이지. 돈 많으면 다야?”

모든 것이 극심하게 쏠려 있는 서울에는 엄청난 돈을 투자하는 뉴스를 많이 보았던 준호는 싼 소주 마신 속이 쓰렸다.

“모르겠어. 말장난하며 자꾸 변절하니 전부다 싫어져… 그래도 그분은 서민적이고, 진보적이란 평가는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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