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 (12)
<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 (12)
  • 경남일보
  • 승인 2013.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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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어제 술자리에서 씹다 남긴 안주 찌꺼기를 씹듯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권력에는 보수도 진보도 없더라.”

“출세하면 모든 걸 용서 받고, 우상으로 숭배 받는 맛은 어떤 걸까?”

준호는 순간적으로 여자의 야망에 번득이는 민지의 섬광을 보았다. 신데렐라를 꿈꾸지 않는 여자는 없구나 싶은 생각에 여자의 본심이 가늠되지 않았다.

“출세하면 조상도 못 알아보고, 야망의 자식들만 키우지.”

“하기야, 늘 끝에는 권력이니까.”

언제나 이야기의 끝은 허망한 인간의 권력 탓으로 돌리고 끝을 맺지 못했다. 맛을 모르는 권력을 마냥 씹고 있기 싫은 준호가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같이 하는 거 맞지?”

“아니, 더러운 싸움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 보기 싫으면 안보는 것으로 내 뜻을 표현 할 거야. 틈나는 대로 도와는 줄게.”

유등으로 예술을 하겠다는 꿈을 가진 민지가 당연히 도와줄 것으로 생각했던 준호는 몹시 서운해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 눈으로 본다고 변하는 건 없어. 어제는 술기운에 그랬을 뿐이야. 술자리 분위기도 맞춰야 하고… 세상에 대한 분풀이도 하고, 가진 자들의 횡포를 보면 치밀어 오르는 거 있잖아. 나도 어쩔 수 없이 서민 팔잔가 봐. 가진 것들은 힘없는 사람들 등쳐먹는 걸 보고 배운다는데…”

어이가 없어 한참동안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던 준호는 머리를 쓸어 넘기고 심호흡을 해 솟구치는 불덩어리를 삼켰다.

“행동하지 않으면 비겁한 거다.”

차마 직접 말하지 못하고 에둘러 속마음을 전했지만 민지는 아무 반응 없이 차분한 걸음으로 촉석루 계단을 올랐다. 촉석루 마루에 올라선 두 사람은 한참동안 말없이 흐르는 남강을 굽어보았다. 시원한 강바람에 긴 머리를 쓸어 넘긴 민지가 나직이 속삭였다.

“어리석은 서민들 선동하는 소리라는 걸 똑똑히 보고도 아직 그런 소릴 하니? 인간 세상에서 사라진 정의 따위에 관심 없어. 난 내 일도 바빠. 기술 배워서 좋은 일자리 찾는 게 내 꿈이야.”

목에 걸쳤던 카메라를 눈에 대고 남강을 둘러보던 준호는 진주교와 천년광장, 천수교를 중심에 잡고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런 건 꿈이 아니지.”

촉석루 아래를 돌아 성 밖으로 나가는 문턱을 넘어서던 민지가 말했다.

“꿈이란 말 아무렇게나 쓰는 거잖아. 듣기 좋게 말이야, 호~! 호~!”

눈앞에 흐르는 남강을 잠시 내려다보던 민지가 옆에 선 준호를 힐끔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결국 돈 벌겠다는 거지만, 인간들이 하는 게 뭐 별거 있나, 다 돈벌이지 뭐.”

유유히 흐르는 남강 물결 속에 홀로 우뚝 자리하고 있는 의암바위 쪽으로 걸어가던 준호가 뒤돌아보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나와 살겠다는 생각을 가졌다거나, 아니면 제2의 고향이든 말든, 진주에 살면 진주를 위해 행동해야 하는 거잖아. 특히나 진주 유등 만들기를 배우고 있으니 더더욱 그래야지.”

치켜뜬 눈으로 힐끔 쳐다본 민지는 솟구치는 미소를 참으려고 돌아서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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