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13)
<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13)
  • 경남일보
  • 승인 2013.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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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기지 마. 흔들릴 나이 지났어. 어디서 만들든 유등은 유등일 뿐이고, 난 개성 있는 창작등을 만들고 싶어 배우려는 것뿐이야.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예술을 하려는 사람이 세상일에 관여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난 예술을 하려는 거 뿐이야.”

의암바위에 올라선 준호가 민지의 손을 잡아당겨 두 사람이 가까워졌다.

“야, 그럼 재능 기부해라. 젊은 사람끼리 도우면서 살자. 어른들은 믿을 수가 없으니까.”

“좋아, 순수하게 축제를 위해서라면 함께 즐겨 보자고.”

특별한 목적도 없이 그냥 데이트할 때와는 왠지 많이 달랐다. 두 사람은 큰 걸음으로 거리를 측정해 노트에 기록했다. 양팔을 벌려 높이를 재기도 하면서 현장답사 하는 재미를 만끽했다. 학창시절 현장학습 나온 학생들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여기저기 사진을 찍었다. 강 건너 동네를 둘러보며, 참고하려고 사진을 몇 장 더 찍었다. 민지와 같이 남강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논개사당에서 매운 충절 앞에 고개 숙였다.

진주성곽 돌담길을 걸으며 민지는 많은 의견을 내놓았다. 준호는 스마트 폰으로 남강유등의 역사 기록을 살펴보았다.

<< 1592년 10월 김시민 장군이 3,800여명에 지나지 않는 적은 병력으로 진주성을 침공한 2만 왜군에 맞서 싸워 민족의 자존을 드높인 진주대첩을 거둘 때 성 밖의 지원군과 군사신호로 풍등(風登)을 올리고, 횃불과 함께 남강에 등불을 띄워 남강을 건너려는 왜군의 도하작전을 저지하는 전술이며, 진주성의 병사들이 성 밖의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도 쓰였다. 또한, 우리 겨레의 최대 수난기였던 나라와 겨레를 지키려고 목숨 바쳐 의롭게 순절한 7만 명의 민관군의 애국 혼을 승화 시켜 매운 얼과 넋을 기리는 것이다. >>

7만 영혼을 모셔 놓은 제단 앞에 선 준호의 자세가 너무나 진지해 민지는 숨을 멈추고 조각 된 이름들을 어루만지는 준호를 지켜보았다. 제단 앞에서 촉석루와 진주 시내를 굽어보며 맹렬히 타오르는 준호의 눈빛을 본 민지는 감탄했다.

“좋은 거 생각났어?”

“순국한 7만 영혼을 등불로 밝히려고.”

준호는 들고 있는 노트에 순국제단과 촉석루, 남강이 굽이쳐 흐르는 진주교, 진주시내의 큰 길을 그리고 유등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7만 개 유등을…”

한참동안 유등을 배치한 준호는 노트 여백에 크게 쓰고 쏜살같이 계단을 내려갔다. 촉석루 옆 성벽에 뛰어 올라 어지러울 정도로 굽이치는 남강 물결 따라 준호의 눈빛이 흐르고, 손에 든 펜으로 남강 변 이쪽저쪽을 손짓하며 1592년 당시 승리의 전투 상황을 설명하며 군사 작전용 풍등과 적군 교란용 유등은 물론 가족에게 소식을 전하는 유등에 대해 당시의 상황을 바탕으로 7만 개의 유등을 구상하고 있었다.

민지는 뛰어 다니느라 준호의 이마에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훔치며 말했다.

“야, 너 김시민 장군처럼 멋있어.”

“전투의 순간은 물론 승리 이후까지 사용했을 풍등과 횃불은 물론 안부를 전했던 유등까지 당시 상황을 상상해서 유등을 배치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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