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16)
<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16)
  • 경남일보
  • 승인 2013.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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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민도 그거예요. 젊은 친구들이 관심을 가져주니 정말 고맙군.”

위원장의 호의적인 반응에 흥분한 준호는 불타는 눈빛으로 민지를 쳐다보았다. 민지의 눈빛은 영롱한 희망으로 반짝였다. 위원장의 고민을 해결해 줄 아이디어를 제시했다는 눈빛으로 통한 두 사람은 그 동안의 고생이 일순간에 눈 녹듯 했다.

“이 정도는 해야 축제하는 사람도 뽄이 나는 건데… 자네들 프로젝트처럼 매년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하는데…”

“그래야, 오래 갈 수 있지예.”

민지는 화사하게 웃으며 위원장의 눈빛과 마주쳤다가 준호를 보고 윙크 했다.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민지가 이렇게 활달하고 밝게 웃는 걸 본 기억이 까마득했다. 대학 새내기 시절의 무궁무진했던 꿈에 부풀었던 그 시절의 살아 있는 눈빛처럼 광채가 났다.

하지만 미간을 잔뜩 찌푸린 위원장은 타는 입술을 쓸어 턱을 만지며 머뭇거렸다. 한숨을 쉬며 의자에 몸을 깊숙이 기대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이디어는 정말 참신한데, 어쩌지? 예산이 부족해서 지금 하는 축제 규모도 벅차요.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말끝을 흐린 위원장은 프로젝트를 준호 쪽으로 조심스럽게 밀었다. 준호의 확신의 눈빛이 흔들렸다. 화사하게 미소 짓던 민지의 입술이 떨렸다.

“예산이 모자라요?”

“그래요, 돈이 모자라서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다 못하고 있는 게 참으로 안타까워요. 풍성하게 장만해서 손님을 맞이해야 축제하는 맛이 나는데, 항상 돈이 모자라 애만 태우고 있으니…”

준호의 얼굴빛은 노래지고 입술을 깨물고 있던 민지는 마지막 희망을 붙잡으려는 듯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위원장님이 오케이하면 되는 거잖아예.”

위원장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없는 거라서, 부끄럽지만 젊은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네.”

잠시 동안의 침묵을 깨고 입맛을 다시는 위원장은 애처로운 눈빛으로 창밖의 유유히 흐르는 남강 물결을 보고 중얼거렸다.

“순진한 젊은이들…”

이글이글 타는 눈빛이 몹시 흔들리는 준호는 민지를 잠깐 보다 고개를 떨구었다.

“축제를 돈으로…”

위원장은 말없이 끄덕였다. 현장 경험이 풍부한 위원장은 좋은 아이디어가 돈이 없어 실현 못하게 되는 것을 수없이 볼 때마다 가슴 아팠다.

“요새는 돈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어. 돈이 없는 축제는 사라지는 세상이 됐다네.”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팔이 떨리는 준호의 머릿속에서 폭풍이 일었다.

고개를 떨군 이마가 붉게 달아오른 준호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보고 있던 위원장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했다.

“몇 십 년을 고생 고생해서 성공시킨 축제를 돈 많은 것들이 가져가버리는 무서운 세상이야. 듣기 뭐하겠지만, 사실 축제를 하고 싶은 의욕이 일지 않아.”

차분하던 위원장의 눈가 주름에 경련이 일었다. 잔뜩 찌푸린 미간에 압박을 가하던 위원장은 화풀이하듯 연거푸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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