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 (17)
<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 (17)
  • 경남일보
  • 승인 2013.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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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자들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으니, 뭘 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떠오르지 않아. 모두가 공황상태에 빠졌어. 한 순간에 강탈해가도 손 쓸 방법이 없으니… 솔직히 더러워서 싸우기도 싫어.”

“양심도 없는 잡것들.”

꿈에 부풀어 밤을 지새워 충혈 된 민지의 눈동자가 이글거렸다.

“못된 인간들 때문에 우리가 부끄러워 서로의 눈을 쳐다볼 수 없다니…”

아름답기만 하던 민지의 눈동자에 살기가 돌아 다정하게 쳐다보지도 못하게 된 준호가 중얼거렸다.

“통째로 훔쳐 간 지저분한 것들. 우리들 꿈인데…”

주먹을 불끈 쥔 위원장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화를 삼키는 듯 심호흡을 했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큰소리치던 놈들이 더 나쁜 짓을 할 줄이야. 그 짓을 해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 세상이 정말 더럽다는 걸 증명해 보이려고 잔대가리 굴리고 있겠지. 앞으로 계속 더 얄팍한 수작을 부릴 테니…”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르고 세상에 나타나서는 힘없는 사람을 구할 테니 밀어 달라고 외치던, 순박하게 미소 짓던 그 비열한 비웃음이 떠올라 구역질이 났다.

“수염 기른다고 깨달아지는 건 아닌데 잔꾀 부리는데 도를 통했어. 의심을 하면서도 부디 좋은 걸 깨달았으면 했는데.”

피 끓는 젊은이들의 타오르는 분노를 본 위원장은 세상을 똑바로 알려 줄 의무 같은 것을 느끼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보게 젊은 친구들, 어리석은 민중들은 수없이 이용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리는 게 문제야. 어리석은 민중들 99%는 항상 속으면서도 색다른 가면을 쓴 짝퉁에게 혹 해서 또 당하고는 고작 욕을 하다가도 옆에 오면 악수하고 싶어 줄을 서거든. 사진 찍느라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준호는 유유히 흐르는 남강에 타오르는 분노의 눈빛을 담구고 잠시 식혔다.

“예나 지금이나 약탈자들이 더 큰소리치는 세상을 용서하는 인류 역사가 반복되는 게 가슴을 찢는데, 정의는 언제나 강자의 편이니 더러운 세상이지.”

준호가 굽어보는 남강 물결에 심심하면 인기몰이하려고 망언을 일삼는 일본인들 얼굴에 유등축제를 약탈한 사람들 얼굴이 겹쳤다.

“못 사는 나라를 잘 살게 해준 천왕을 존경하라는 거나, 돈 많은 서울이 나서서 세계적인 축제로 성장시켜 줄 테니 너희들도 참여하고 싶으면 와라는 배은망덕을…”

망언을 일삼으며 활개를 쳐도 어떻게 하지도 못하는 더러운 세상은 정말 미웠다.

“아무리 더러워도 방법이 없어… 익숙해지는 수밖에.”

“못된 것만 배워 가지고. 약탈한 걸 가지고 주인 행세까지 하며 꼴값 떨어도…”

순간 위원장은 엄습하는 두려움에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일본이 망언을 쏟아대는데, 왜군에 맞서 싸운 애국충절도 잊어버리고 막하는 걸 보고 젊은 친구들이 따라 할까 두려웠다.

위원장은 젊은 친구들 앞에서 차마 부끄러워 말 못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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