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수역부와 속수무책 유감
적수역부와 속수무책 유감
  • 경남일보
  • 승인 2013.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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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완 (합동참모본부 사후검토관)
‘적수역부(?水易腐)’란 고인 물은 썩는다는 뜻이고, ‘속수무책(束手無策)’은 손을 묶은 것처럼 어찌할 도리가 없어 꼼짝 못함을 뜻한다. 올 여름은 1931년 기상관측 이래 최고기온(울산 38.8℃)을 기록하는 한증막 같은 무더위 속에서 전기수급의 블랙아웃(blackout·대정전) 방지를 위해 절전을 호소하다 못해 공공기관에서는 초유의 ‘냉방가동 전면중지’로 전기수급의 위기를 모면해야 했다.

등에서는 땀이 흐르다 못해 속옷을 흠뻑 적시고, 실내온도가 33도를 웃돌면서는 아예 업무를 볼 수가 없다. 국가적 위기에는 동참하지만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왜, 어떻게, 얼마만큼 잘못했기에 이 고통을 당해야 되는지 국민들은 흐르는 땀만큼 분노하고 있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도 페이스북의 CEO 마크 주커버그를 접견할 때 에어컨을 껐다는데 이래서는 안된다.

지난 5월29일 원전 비리 수사착수 후 29명이 구속됐다. 한국수력원자력의 비리는 원전관리라는 특수성과 폐쇄성 때문에 말 그대로 복마전이다. 전국 23기원전의 건설·납품·보수·관리까지 한수원이 모두 맡고, 같은 업무를 수십 년씩 맡는 직원, 원전이 기관 및 기밀사업이기 때문에 매년 실시하는 감사원 감사는 내부자 폭로 없이는 비리 적발이 어렵단다.

1986년 4월 26일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로 반경 30km는 사람이 살지 않는 죽음의 땅으로, 2011년 3월 11일 대지진이 일본 동부를 강타한 후 후쿠시마 원전사고지역 반경 20km는 사람의 출입이 금지됐고, 지금도 해양으로 방사능이 유출되고 있다. 문제는 전기 수요예측의 잘못과 원자력사고의 치명성을 간과한 채 원자력관련 비리가 발생하여 전기수급이 제한받는데 있다.

보편적으로 ‘알아야 면장(面墻)을 하지’는 면장(面墻)을 우리 행정구역의 기관장인 ‘면장(面長)’으로 잘못 알고 있다. 이 ‘면장(免牆)’의 출처는 ‘논어 양화편(陽貨篇)’에 나온다. 공자가 그의 아들인 백어에게 말하기를, “너는 시경의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을 공부하였느냐? 사람으로서 주남과 소남을 공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치 담을 마주하고 서 있는 것과 같다”라 하였다.

면장(面牆)은 공부를 하지 못해 아는 것이 없는 답답한 상태를 나타낸다.

학문의 진전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시경을 공부해서 지식의 시야를 넓힌다는 의미의 담을 벗어난다는 것이 면면장(免面牆)이고, 이것이 줄어 면장(免牆)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알아야 면장(面牆)을 하지”라는 말은 “알아야 나를 가로막은 담에서 벗어나지”가 본래 뜻인 셈이다.

현실적으로 한수원이나 원자력발전에 근무하지 않은 사람은 원자력발전의 부품 진위 여부를 가려내기 어렵다. 그런데 한수원이 모든 발전소를 운영하고, 한국전력기술은 발전소를 설계·부품을 검사하며, 안전인증을 검토한다. 특수성과 폐쇄성으로 ‘알아야 면장(面墻)을 하지’가 여기에 딱 맞는 것 같다. 원천적으로 ‘법, 제도, 정책’이 비리의 고리를 안고 있는 시스템이다.

‘대관소찰(大觀小察)’은 종합·균형감각을 위해 ‘숲을 보고 나무를 보라’는 거시적 통찰력을 뜻한다. 정치 특히, 통치의 핵심은 대관소찰이라 본다.

박 대통령은 성폭력·학교폭력·가정폭력·불량식품 등 이른바 ‘4대 사회악’ 척결을 비롯한 민생치안 확립을 중요 국정목표로 제시했다. 지금까지는 ‘개성공단이나 전두환 추징법 및 세제개편문제 등’을 국민들은 속 시원해 하고 있다.

문제는 국정을 운영하다 보면 ‘한수원’ 같은 문제가 여기저기서 불거질 수 있어, 사안이 발생할 때 마다 일일이 대처할 경우 대관소찰의 기조와 균형감각을 잃고 나무에만 집착하는 형국을 초래할 수도 있다. 지금이 ‘적수역부와 속수무책’을 되새겨 국정이란 수례바퀴가 잘 굴러갈 수 있도록 ‘법, 제도, 정책’을 손질하여 국가의 기강을 똑바로 세워야 될 적기라고 본다.

강태완 (합동참모본부 사후검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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