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옥 교수의 운동이야기
권선옥 교수의 운동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13.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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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든 사과,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Ⅱ
1986년 유럽 육상 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동독의 하이디 크리거는 여자 투포환에서 21m10cm를 기록해(한국신기록 17m, 이미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남자 선수들과 견줄만한 대단한 기록이었다. 하지만 대회 직후 몸에 남성적인 특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끝내 하이디는 1990년 24살에 은퇴를 선언했다. 그녀는 은퇴한지 7년 만에 성전환 수술을 받았고 결국 남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는 동독정부의 체제옹호를 위한 대규모 도핑프로젝트에 희생된 결과였다. 동독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미국을 제치고 종합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금지약물 복용이 만연했던 동유럽 국가들에는 현재 코치, 감독직을 수행할 50대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약물 부작용으로 1960~70년대 뛰었던 선수들이 대부분 요절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2013 모스크바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자메이카의 우샤인 볼트가 100m에서 9초77의 기록으로 무난히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볼트의 우승은 대회 시작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그동안 부단히 볼트의 뒤를 쫓던 2인자들 즉, 올 시즌 가장 좋은 기록을 내며 2007년 오사카 세계대회 3관왕의 영광을 재현하겠다고 벼르던 타이슨 게이(미국)와 아사파 파월(자메이카)이 금지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드러나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금지약물은 모두 아나볼릭-안드로제닉 스테로이드이다. 흔히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로 줄여서 부른다. 테스토스테론 같은 남성호르몬을 합성해 만들지만 아나볼릭 효과는 극대화하고 안드로제닉 효과는 최소화한 스테로이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 스테로이드는 아나볼릭, 즉 단백동화(근육합성)의 효과뿐만 아니라 안드로제닉 즉, 남성적 특징의 효과를 갖는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오랫동안 침대에 누워 있어서 근위축이 일어나는 환자의 조직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해 개발되었으나 곧바로 이 약물이 선수들의 근육크기를 크게 하여 근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 약물의 힘은 강력했다. 약물투여군은 위약투여군에 비해 제지방량, 근육량 근력에서 크게 향상되었고 육상의 필드경기와 단거리종목, 미식축구, 수영, 스피드스케이팅, 야구, 그리고 역도와 같이 근파워(순발력)가 중요시되는 스포츠의 선수들이 많이 애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분명 있게 마련이다. 신체의 구조와 기능을 강제로 바꾸는 데에는 혹독한 대가가 따른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경험이 있는 여성은 남성에서의 2차 성징(목소리가 굵어지고 수염이 남), 음핵의 확대 그리고 월경불순과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고 보고되고 있다. 안드로제닉(남성적 특성) 효과는 줄였지만 남성호르몬을 합성해 만들었기 때문에 여전히 그 효과는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 복용의 남성에게서는 정액생산의 감소와 정소의 기능 감소, 여성형 유방 그리고 간기능 부전 등의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사용을 금하는 것은 이렇게 이 약이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약물사용이 줄어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스포츠에서의 일등지상주의가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미국의 한 스포츠 잡지에서 국가대표 육상선수들에게 ‘이 약물을 복용하면 확실히 금메달을 딸 수 있는 대신 부작용으로 7년 뒤 사망한다. 당신은 복용할 것인가?’라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놀랍게도 80%의 선수들이 복용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결코 믿고 싶지 않은 결과이지만 이렇듯 운동선수들에게 1등 성적은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저 1등이라는 목적(결과)만 필요할 뿐 연습과 훈련(과정)의 가치는 경시하는 1등 지상주의가 인간을 경마장의 말로 바꾸어 놓지는 않았을까? 원래 약물복용은 경마에서 시작되었고 도핑테스트 또한 경마에 그 기원이 있으니….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독이 든 사과다. 아무리 그게 맛있게 보일지라도.

/경상대학교 체육교육과
도핑테스트
스테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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