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19)
<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19)
  • 경남일보
  • 승인 2013.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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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 출신답게 민지의 생각 역시 어설픈 희망을 애당초 버리고 있었다.

“어리석은 민중들이 믿는 여론 역시 돈 앞에서는 흔들린다고.”

“이익이 곧 여론이지.”

축제 위원장이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현실을 젊은 친구들에게 알려주었다.

“정당하게 약탈하려고 오히려 조작한 여론을 사용하지. 황당무계한 대의명분을 만들어 어리석은 민중을 선동하지. 이익을 부추기면 쏠리는 게 민중들 여론이야. 내용은 중요하지 않아. 타이밍을 잘 맞추는 극적인 쇼를 통해 선동하면 이기니까.”

유등 예술가를 꿈꾸는 민지는 이상하게 확신에 찬 표정으로 차분히 입을 열었다.

“축제장 가보면 짜증나는 이유가 돈으로 축제를 하기 때문이야. 꿈이 없는 축제가 좋을 수가 없는 이유야. 언제나 가진 자, 그들만의 축제를 하니 짜증나지.”

현장 경험이 풍부한 위원장은 피식 웃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VIP를 위한 잔치에 구경꾼으로 들러리 하는 게 보통 축제의 현실이야.”

“방법이 없는 거예요?”

위원장은 굳은 표정으로 두 사람을 둘러보다 말도 하기 싫은 듯 고개를 저었다.

멍하니 쳐다보는 애처로운 젊은 친구들의 애달픈 눈빛을 향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세상 인간들을 멋대로 가지고 놀 줄 알아야 출세하는 거야. 불편한 진실이지.”

준호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을 알고는 허탈했다. 유등 프로젝트가 좋은 건 사실이지만 돈 때문에 거절당하고 남강 변을 걷는 두 사람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일순간에 모든 걸 잃어버린 준호는 민지 보기가 미안했다.

비지땀 흘리며 만든 프로젝트가 결국 돈 문제로 이야기가 변질되면서 취직도 못한 죄인 준호는 또 다시 고개를 떨구었지만 여전히 대책이 없다는 게 더 짜증났다.

“돈이 없으면 꿈도 꾸지 못하는 세상이네. 더러워서!”

민지는 쳐다보지도 않고 쏘아 붙이듯 짧게 내뱉었다.

“돈이 원수지.”

어디를 가나 돈이다. 뭘 하든 돈이 필요하다. 돈만 있으면 뭐든지 다 되는, 지구촌 전체를 돈이 지배하고 있고, 지구 반대편의 돈 사정에 따라 울고 웃는 돈 세상이다. 없는 사람들의 삶을 포기하게 만들어버리는 것들이었다.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는 젊은 남녀는 현실의 벽에 부딪치는 순간 알 수 없는 분노를 서로를 향해 쏟아 부었다. 유등의 꿈이 돈 앞에서 무참하게 무너지고, 무르익던 사랑도 현실의 벽에 부딪치면서 모든 희망 빛이 사라졌다.

“우리 꿈 깨자. 취직 공부나 해.”

알 수 없는 분노와 돈 없으면 어쩔 도리가 없는 어처구니가 솟구쳐 짜증난 민지는 화를 내고 가버렸다.

며칠이 지나도록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더 이상 유등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준호는 뚜렷하게 내세울 게 없어 처박혀 있었다. 돈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준호는 서서히 의욕을 잃어갔다. 학자금 대출 받은 이자를 부모가 대납하고 있는 준호의 처지에 억 소리 나는 돈을 마련할 방법은 없었다.

“사랑마저 돈 앞에서 흔들리는구나.”

돈 없으면 사랑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세상. 돈 앞에서 꿈은 좌절되고 사랑이 떠나가지만, 그녀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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