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20)
<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20)
  • 경남일보
  • 승인 2013.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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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다만 사랑이란 것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지만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어 상처 난 짐승처럼 울부짖기 시작했다.

“세상이 그런 걸 어쩌겠나. 세상 생각 속에서 살고 있는 게 문제지. 세상을 떠나 살 수도 없고,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걸.”

죄 없는 죄인 준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랑도 돈이 하는 거다. 인간이 사랑하는 거 아냐.”

짝사랑하는 사람이 말을 못 하듯 돈 없는 사람은 사랑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 돈 세상에 살고 있었다. 99% 말종인간들처럼 돈 앞에서 전부를 포기 당한 민지는 야망을 찾아 서울로 간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네 꿈이 아니잖아.”

“알아, 내 선택이 위험하다는 거. 난 이대로 살고 싶지 않아. 서울 가서 출세할 거야. 야망에 미친년, 돈독 올랐다고 욕해도 할 수 없어. 너도 빨리 꿈 깨길.”

새내기 시절의 불타는 사랑은 식고, 단순히 친하게 지내는 친구처럼 덤덤해졌다가도, 외로울 때 말동무하고, 괴로울 때 서로를 위로하며, 좋은 일 있으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칭찬하고 기쁨을 나눌 때면 잠잠하던 사랑이 맹렬히 타올랐다.

오래 사귄 두 사람은 곧 충분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결혼식만 올리면 된다고 믿으며 좋은 직장에 취직해 돈 벌어서 둘만의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뛰었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꿈을 잃어버린 젊은 남녀는 하나하나 꿈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충분조건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기반이라도 잡아야 한다는 소망으로 열심히 뛰었지만, 세상은 그마저도 내주지 않으며 간절한 소망마저 물거품이 돼버렸다.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긴 세월 동안의 오랜 투쟁에 지친 두 사람은 흔들리는 순간들을 견디며 미지근하게 삶의 동반자처럼 덤덤해져 버렸다. 몇 년 전부터 취직한 몇몇 친구들 결혼식에 우인대표로 갔다 오는 날에는 민지 보기가 더욱 미안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장래가 불투명한 두 사람은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피했다. 서로 눈치 보며 나이 들어가는 두 사람은 예전처럼 타오르지 않았다.

모처럼 찾아온 유등의 꿈으로 한 동안 부풀어있던 두 사람은 잠시 동안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꿈을 이야기했지만 결국 돈 앞에서 꿈은 무너졌다. 유등의 꿈은 상처만 남기고 철없던 시절의 장난처럼 가슴속에 묻어야 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꿈을 포기한 민지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출세의 야망을 품고 서울로 갔다. 준호는 붙잡을 명분이 없었다. 보란 듯이 잘 살겠다는 야망을 찾아 떠나는 민지와 꿈을 품은 준호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사랑을 사이에 두고 헤어졌다. 사랑하는 두 사람은 여기서 각자의 갈 길이 달랐다.

“어린애도 아니고 내가 꿈꾸는 것을 너에게 강요할 수 없으니까. 사랑한다는 걸로 너를 붙잡을 명분이 서지 않는 세상이야.”

준호는 그런 걸 알고 정신 차려 철들어야 할 나이가 지났다는 생각도 스쳤다.

“서울 가서 행복하게 살어.”

준호는 함께 꿈꾸던 행복을 빌어주는 문자를 보내 사랑을 떠나보냈다.

삶의 전부를 잃었지만 생명을 포기하려는 나약한 마음을 달래 일단은 버티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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