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22)
<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22)
  • 경남일보
  • 승인 2013.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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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불편하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하는 청년 싶은 준호의 젊은 가슴에서 분노가 끓었다.

“돈이 없으면 지구촌이 돌아가지 않으니, 인류의 꿈이 돈이 돼버렸어. 꿈과 사랑이 사라진 세상에.”

유등의 꿈이 좌절되고 사랑이 떠나 버린 준호의 영혼은 서서히 시들고 있었다.

폭풍의 갈등이 일고 수차례 운명이 일렁거렸다. 상처에 면역이 생기고 죽음 앞에 서야 했던 번뇌가 잊혀져가는 세월이 흐르던 어느 날, 준호는 젊은 놈이 이러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나름 정리를 시작했다. 준호는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7만 유등에 불을 밝히는 계획서를 만들던 노트를 벽을 향해 집어던져 버렸다.

“꿈 깨자!”

아무리 생각해도 달리 방법이 없다고 결론 내린 준호는 조용히 눈을 감고 한 순간 휘몰아쳤던 유등의 꿈을 하나하나 머릿속에서 지워 나갔다.

“무조건 취직해서 돈을 벌자.”

눈을 번쩍 뜨고 훌훌 털고 일어난 준호는 방안을 맴돌며 무조건 취직에 대한 생각을 시작했다. 집어 던져 널브러진 노트가 발길에 밟혀 차 버렸다. 노트는 벽에 부딪쳐 뒤집혀지고 속에서 내용물이 흩날렸다.

“저건…?”

흩어지는 내용물을 멍하게 쳐다보던 준호의 눈빛이 한 장의 빛바랜 사진에 꽂혔다. 마치 사진을 찍을 때 최고의 순간을 포착하듯 준호의 눈이 깜빡 하고 다시 떠는 순간 추억을 담아 놓은 사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철없던 시절…”

빛바랜 사진을 보고 있던 준호는 학창시절 추억이 떠올라 빙긋이 웃었다. 7만 유등을 준비할 때 노트 앞표지 안쪽에 넣어 두었던 유등축제 때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기억에 남아 있는 준호의 어린 시절부터 개천예술제가 열리면 가족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어떤 형식으로든 축제에 참여했다. 그것은 유등축제로까지 이어졌다. 아버지는 동네 상징유등을 남강 변에 전시하는 행사에 참석하고, 어머니는 먹거리 장터 봉사활동에 나갔다.

어머니가 음식 봉사활동 하는 날은 아버지가 한 턱 쏘는 날이다. 고생하는 어머니 위로 겸 가족 외식인 셈이다. 파전에 순대 한 접시 곁들여 막걸리를 마시고, 어머니 주특기 메뉴 잡채를 한 접시 시켜 맛있게 먹었다. 마지막엔 명물이 된 진주비빔밥까지 먹으면 배꼽이 불거져 나오도록 배가 불러 불룩한 배를 내밀고 퉁퉁 치면서 천막을 나섰다. 아들이 만든 창작 등을 보고 싶어 하는 어머니가 따라 나섰다.

“우리 가족을 건강하게 해주세요.”

어머니가 마음의 등불을 밝혀 놓은 소망등 터널을 지나면서 가족의 건강을 기원했다. 터널에 걸린 수많은 사람들의 소망이 빛나는 걸 보고 참으로 아름다운 빛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올해는 로봇이네.”

“예, 꼬마 적 꿈이었죠.”

아버지는 준호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꼬마 적 로봇을 유별나게 좋아했지. 무슨 로봇이야?”

“인공지능 로봇. 어른이 되면 꼭 만들려고 어릴 적부터 생각했던 로봇이에요.”

아버지가 관심을 보이며 자세히 물어보는 게 기분 좋아진 준호가 자랑을 했다. 아버지는 준호의 어깨를 툭 치며 칭찬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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