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23)
<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23)
  • 경남일보
  • 승인 2013.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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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생각이네. 꿈을 키워가는 건 좋은 거지.”

“친구들도 고민하다 결국 각자 자신의 꿈을 만드는 걸 보고 참 신기했어요.”

아버지는 창작등 터널 가득 하나같이 다르고 개성 있게 만들어진 유등을 둘러보며 말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학창시절 꿈들이 빛나고 있으니 신기해.”

“아버지도 유등을 만드셨어요?”

“매년 만들었지, 희미하게 생각나는데… 그때는 좋은 장비들이 없어서 대나무 살대와 한지로 유등을 만들고 촛불을 밝혔지. 굵직한 재럽이나 수수깡을 흰 실로 십자로 묶어서 남강 물에 뜨게 몸통으로 만들고는… 음, 쓰고 남은 문종이를 겨우 구해서 밥풀로 붙여 유등을 만들었지. 자연 물감을 짜서는 문종이에 이런저런 그림을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한자성어를 붓글로 쓰기도 했지.”

이리저리 손짓을 하며 유등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는 모습이 너무도 진지했다.

“완전히 수공예품이네요.”

“그렇지. 하나부터 열까지 자연 재료를 사용했어. 줄을 서서 강물에 띄우면 처음에는 잘 떠내려가지 않아 애를 태웠지. 떠내려가도록 하려고 입김을 불고, 손발로 강물을 일렁거려 물결을 일으켜, 작은 파도를 치게 하여 강 중앙으로 보내려고 애를 쓰지. 조금 중앙으로 들어가면 유유히 흐르는 남강물의 흐름을 타고, 흔들흔들 떠내려가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지 몰라. 바다까지 떠내려가서 지구 반대편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해 준다는 소문들이 무성했어. 참 재미있었지. 미국에서 영문으로 답장이 왔다는 친구들이 허풍을 떨면서 펜팔 친구가 됐다고 헛소문이 퍼지면 학교는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는데…”

빛바랜 사진 속의 중년의 아버지는 사춘기 시절로 돌아간 듯 철없던 시절을 가족 앞에서 자랑했다. 평소보다 말이 많아진 아버지는 축제장에 오면 젊은 시절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러나 항상 아버지 이야기 끝은 뭔가 아쉬움이 남는 듯 했다.

“아버지도 꿈이 많았어요?”

“꿈도 없는 게 어디 젊음인가. 꿈과 사랑이 없는 추잡한 세상아, 내 꿈에 관여하지 말지어다. 내 꿈은 나의 것이다. 내가 알아서 할 자유가 있고, 내가 불타오를 수 있는 영혼의 불씨는 꿈이다. 세상에는 경쟁자가 없는 것이 내 꿈이다.”

술기운까지 오르면 객기 부린다 싶을 정도로 피 끓던 젊은 시절로 돌아간 아버지는 패기 넘쳤던 젊은 시절 이야기를 자주 했다. 항상 그렇듯이 아버지 이야기의 끝은 살아오는 동안의 체험을 깨달은 자신만의 삶의 철학 비슷한 이야기로 결론에 도달하지만 매번 난해하다는 생각을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99%의 인간들은 깨어나고 싶은 생각 자체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단순히 출세하는 건 자기 꿈이 아니잖아. 99%의 사람들은 꿈을 포기하지. 99% 인간들은 사는 게 아냐. 살다보면 인간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

‘위기가 닥치면 자신을 돌아보다 결국 자신의 꿈을 찾는다.’ 준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꿈과 관련된 지식과 경험을 더듬으면서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었다. 나름대로 한다고 열심히 해 봐도 딱히 되는 게 없는 준호는 인생에서 큰 위기가 닥쳤다는 것을 감지하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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