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장례문화 이대로가 좋은가?
우리의 장례문화 이대로가 좋은가?
  • 경남일보
  • 승인 2013.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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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숙향 (시인, 하동 악양초교 교사)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가을의 문턱 9월을 실감케 한다. 매년 음력 8월 초하루를 전후해 후손들이 조상의 선영을 찾아 가족별·문중별로 벌초를 다니는 ‘벌초행사’가 한창인 때이다. 늦어도 추석 명절 전까지는 벌초를 마무리하는 게 조상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우리에겐 ‘벌초문화’가 오래전부터 뿌리 깊게 내려져 있다. 객지로 떠난 가족들도 이때가 되면 돌아와서 벌초를 하기도 한다. 비록 고향을 떠나서 살고는 있지만 아이들에게 자신의 뿌리가 어디인지를 직접 느끼게 하기 위해 함께 왔다며 아들에겐 힘들지만 의미 있는 하루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가족·문중들과 함께 조상의 묘를 찾아 벌초하며 조상을 기리는 진풍경인 것이다.

그러나 벌초행렬이 이어지면서 안전사고도 잇따라 발생하기도 하니 때로는 가족의 건강을 염려하는 기우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예초기가 보급되면서 벌초하기는 한결 수월해졌지만 그에 못지않게 안전사고도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예초기에 의한 안전사고도 하루 평균적으로 7명이라 하고, 올해 역시 벌에 쏘여 사망하는 사람들도 예년에 비해 부쩍 많아졌다.

절기상 풀의 성장이 멈춰 풀베기가 가장 쉬워서 벌초는 보통 추석을 앞둔 이 시점에 하는데 도시인으로서는 ‘처삼촌 뫼에 벌초하듯’ 대충하기도 쉽지 않다. 어른 키를 웃도는 잡목이나 덤불 더미 때문에 산소 위치 파악도 쉽지 않고 갑작스러운 뱀의 출현이나 말벌과의 싸움도 이겨내야 한다. 익숙하지 않은 낫질은 물론 예초기를 잘못 다뤄 팔, 다리를 다칠 수도 있다. 이래저래 곤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다른 곳에 맡기는 사람들이 해마다 급증세를 보이고 있어 벌초대행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심지어 후손들에게 벌초 전후의 모습을 사진 등으로 전송해주는 서비스까지 제공돼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벌초를 맡기면 조상을 기리는 의미가 퇴색된다는 부정적 시각도 있지만, 오히려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으므로 출향민들의 관심이 많다고 한다. 고향을 떠난 바쁜 도시민들에게 벌초대행 서비스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화장률은 2011년 기준 71%에 이르고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으로 진단된다고 한다. 이에 따라 조상을 생각하고 후손의 도리를 되새겨보는 소중한 기회로 여기기도 하는 벌초 풍습이 지금 10대가 어른이 될 무렵이면 아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우리의 장례문화 이대로가 좋은가?’를 오랫동안 토론과제로 지속시켜 왔다. 장단점이 뚜렷해 토론을 펼쳐 나가기에 적절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해마다 이 시기가 되어서 시간에 쫓기고 밀리는 차량행렬에서 벌초행사를 바꿔 나가면 좋겠다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의 얘기가 들려오는 반면 조상과의 소통이라는 우리 정신문화의 맥이 끊기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 온다. 장례문화가 바뀜에 따라 벌초행사의 존폐까지도 달려 있으니 이는 하루아침에 바뀔 성질은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원하고 선택해 가는 장례문화의 방향에 따라 벌초행사도 새로운 우리 문화의 양상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감된다.

필자는 개인적 생각으론 인생 말년에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떠도는 차분한 가을날의 나뭇잎 같은 후기(?)를 원한다. 굳이 눈에 보이게 되새김질시키지 않아도 영원히 정신적으로 각인될 수 있는 그런 조상으로 남고 싶은 것이다.

최숙향 (시인, 하동 악양초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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