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24)
<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24)
  • 경남일보
  • 승인 2013.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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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어떤 답을 찾아보고 싶은 준호는 아버지에게 소주 한 잔 하고 싶다고 청했다. 삶의 갈림길에서 최종 결론을 내리기에 앞서 어른의 조언을 듣고 싶었고, 한편으로 가장 궁금한 것을 꼭 알고 싶었다.

유유히 흐르는 남강이 굽어보이는 장어집 창가에 아버지와 나란히 앉았다. 다 큰 자식이 독대를 신청하는 것은 부모 입장에서 아주 중대한 사안이기에 아버지는 긴장했다. 아버지는 자식 취직 걱정하고, 자식은 아버지 건강을 염려하며 몇 잔의 소주를 비우고, 준호는 아버지에게 낡은 사진을 건넸다.

“유등축제가 날로 번창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사진을 한참 쳐다보고 있던 아버지는 소주잔을 비우고 유유히 흐르는 물결에 어른거리는 불빛을 쳐다보며 조용히 잔물결을 일으켰다.

“꿈이다 아이가.”

이제 다 큰 자식과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시점이라고 생각한 아버지는 자식에게 잔을 건네며 말을 이었다.

“아마도 영원할 끼거마는. 유등 나이가 고희 정도 되시낀데.”

준호는 영원할 거라는 아버지의 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싶어 물었다.

“세상 따라 모든 게 변하는데, 유등축제도 유행이 지나면 시들해질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아버지는 ‘이거, 지 생각이 있기는 있네. 자슥이 마이 컷네’ 하는 생각이 번득 스치는 순간 긴장했다.

“그런께, 튀는 기 있어야 영원할 끼다 이 말이제? 남강 유등은 그기 있다 아이가.”

“뭔데요?”

“남강유등 불빛이 꿈을 밝히고 있다 아이가, 이 아부지도 애릴 때 꿈을 유등 불빛으로 밝혔다 아이가, 니도 애릴 때 니 꿈을 유등 불빛으로 밝힌 거다 아이가.”

소주를 쭉 들이켠 아버지가 차분한 눈빛으로 준호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꿈은 계속 이어지는 기라. 항상 새로운 꿈의 등불이 남강을 밝힐 끼다.”

나름대로 핵심이라고 생각했던 내용에 대해 아버지의 조언을 듣고 싶었다.

“학창시절에 말씀해 주신 건데 아직 그 뜻을 몰라서… 진정한 꿈은 1% 뿐이다는 게 사실이에요?”

순간, 제대로 컸구나 생각한 아버지는 긴장하여 입술을 쓸어 마음을 다잡았다.

“인류의 99%는 꿈인지 야망인지도 모르고 사는 기라. 1% 깨어 있는 사람들만이 진정한 꿈을 이루는 기라. 인류가 최대 희망으로 믿는 꿈이 환상인 기라. 99%는 꿈이 아닌 걸 꿈이라고 우기는데 전부 다 하찮은 야망인 기라. 고상하게시리 꿈을 구걸하지만서도 애시당초 꿈이 아닌 기라.”

평소 몹시 궁금했지만 결코 명확하게 붙잡을 수 없었던 것을 이참에 뚜렷이 구분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꿈과 야망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지예?”

“땀으로 이루어지는 게 꿈이 아이겄나. 야망이란 놈은 막하게 만들어 버리지만서도, 너무 막하다 보모 지 잡아먹는 기라.”

쉽게 다가오지 않는 준호의 눈빛이 좀 더 명확한 설명을 기다리며 아버지 잔에 소주를 따랐다.

“들어 볼래? 아, 서울 아아들이 진주유등축제 약탈했제. 강탈해서라도 무조건 성공하고 보자는 기 위험한 야망인 기라.”

술잔을 내밀자 자세를 바로 한 자식은 아버지 잔에 살며시 대고 한 모금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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