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이름 속에 숨겨진 비밀
태풍 이름 속에 숨겨진 비밀
  • 경남일보
  • 승인 2013.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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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균 (부산지방기상청장)
‘개미’, ‘나리’, ‘장미’, ‘미리내’, ‘노루’, ‘제비’, ‘너구리’, ‘고니’, ‘메기’, ‘독수리’ 등 총 10개 단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보기에는 동·식물 이름으로 생각되나 TV에서 한번 쯤 들어봤을 태풍 이름들이다. ‘루사’, ‘매미’ 등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태풍이 있는 반면 큰 피해 없이 여름철 무더위, 가뭄, 적조 등 해결사 역할을 한 고마운 태풍들도 있다. 다른 자연현상이나 재난과는 달리 유독 태풍만이 자신만의 이름을 갖고 있다. 이는 태풍이 일주일 이상 지속될 경우 같은 지역에 하나 이상의 태풍이 존재할 수 있고, 그런 경우 예보의 혼동이 오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서다.

태풍에 처음으로 이름을 붙인 것은 호주의 예보관들이었는데, 주로 당시 싫어하는 정치인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래서 예보에는 “현재 앤더슨이 태평양 해상에서 헤매고 있는 중입니다.” 또는 “앤더슨이 엄청난 재난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발표했다고 하니, 정치인 입장에서야 즐겁지는 않았겠지만 재미있는 발상이라 생각하고 웃어 넘겼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기억하는 1959년의 태풍 ‘사라’는 여자이름을 사용했다. 초창기에는 태풍 이름에 여자이름을 붙였는데, 여자처럼 온순하고 조용해지라는 의미로 사용됐다. 하지만 성차별 논란이 불거지자 이후부터는 남자와 여자 이름을 번갈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미국 태풍합동경보센터에서 만든 영어로 된 태풍 이름을 사용했는데, 태풍 이름 짓기에 새로운 변화가 불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등의 아시아 지역 태풍 위원회 소속의 나라들이 뜻을 모아 지금까지 써 온 영어 이름 대신 각 나라의 말로 된 태풍 이름을 지어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한글로 된 태풍 이름을 붙여 쓸 수 있게 됐다. 이 계기로 인해 기상청에서는 전국에서 공모한 한글 이름 70개를 뽑은 뒤 이 중 국제적으로 발음하기 쉬운 10개의 태풍 이름을 선정했다. 태풍위원회 회원국인 북한도 한글 이름을 선정해 현재 한글로 된 태풍 이름은 모두 20개를 사용하게 됐다.

어느 날 사라진 태풍의 이름도 있다. 매년 개최되는 태풍위원회 총회에서는 그 해 막대한 피해를 입힌 태풍의 경우 앞으로 유사한 태풍 피해가 없도록 해당 태풍 이름의 퇴출을 결정하며, 피해를 주지 않은 태풍일지라도 다른 사유로 더 이상 현재 태풍 이름을 사용할 수 없을 경우 새로운 태풍 이름으로 대체된다. 수많은 인명피해와 막대한 재산피해를 입고 나면 그 태풍의 이름은 다시 듣는 것조차 불쾌해지기 마련이다. 현재까지 총 25개의 태풍 이름이 퇴출됐으며, 2003년 우리나라에 큰 피해를 입힌 태풍 ‘매미’는 퇴출되면서 ‘무지개’ 라는 이름으로 변경되기도 했다.

얌전하게 잘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이 반영된 태풍의 이름처럼 작년과 달리 올해 태풍은 큰 피해를 주지 말고 그저 ‘효자태풍’이기를 희망해 본다.

/김성균·부산지방기상청장

김성균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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