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25)
<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25)
  • 경남일보
  • 승인 2013.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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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원하는 꿈은 꿈이 아인 기라. 세상 생각 속을 떠돌아 댕기다 결국 길을 잃고 마는 기라. 진짜 꿈은 세상과 아무 상관없는 기라. 확 깨어 있는 1% 사람들은 어떤 어려움이 닥치도 지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아이가.”

조금은 이해가 되는 듯 준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깊이 새겨야 할 조언을 준 아버지가 고마워 두 손으로 공손히 잔을 올렸다. 받은 잔을 들어 올리며 아버지가 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꿈은 포기되지 않는 기라.”

그래서 꿈은 이루어지는구나 싶은 준호의 눈빛이 반짝였다. 준호는 ‘99%의 포기하는 꿈은 꿈이 아니다’는 뜻에 어렴풋이 접근했다. 컸다고 이제 알아듣는구나 싶은 아버지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아버지는 자신이 살아오면서 직접 체험하고, 보고 듣고 해서 알게 된 소중한 경험을 받아들여주는 자식이 고마웠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기라. 지 꿈을 표현할 기회를 준께 말이다. 사람들이 유등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인 기라. 올해 유등축제 억수로 기대되네.”

자식이 유등축제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을 아는 아버지는 기대한다며 용기를 북돋아 줄 뿐이었다. 자식이 컸다고 자존심 때문에 둘러 묻는데 잔소리를 할까 싶었다.

“말씀 듣고 보니 모든 유등이 꿈이네요.”

아버지는 기억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 된 추억인 철없는 시절부터 유등과 함께 한 세월을 밤새도록 이야기해도 끝없이 이어갈 이야기가 있었다.

“누구는 꿈을, 어떤 이는 소망을…”

“대를 이어온 유등.”

혼자 중얼거리며 들고 있는 자식 잔에 부딪친 아버지는 흐뭇한 표정으로 끄덕이다 잔을 비웠다. 아버지 빈 잔을 채워주던 준호가 빙긋이 웃으며 지나가는 듯한 말을 하면서 남강을 굽어보았다.

“저도 아버지가 되면 자식들하고 같이 와야겠네요.”

“그기 부모 노릇하는 기란다. 오늘 우리처럼 좋은 시간이 될 기다. 먼 훗날 자식새끼들에게 할아부지 이야기부터 해서, 니 꿈에 대한 이야기도 해줌시러… 기념으로 사진 한 방 박자. 후손들한테 비줄라모 인증 샷이 있어야 할 거 아이가.”

준호는 휴대폰을 꺼내들고 아버지 옆자리로 옮겼다. 자식 어깨를 휘감은 아버지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게 솟구치는 준호는 셀카를 찍었다.

준호의 기억 속에도 수많은 유등들이 있다. 나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발버둥 치던 사춘기 시절,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학창시절부터 친구들과 어울리기 이전까지, 부모와 같이 개천예술제와 유등축제에 갔던 사진들이 흑백에서 칼라로 바뀐 것뿐 매년 준호 가족은 남강 변 유등축제장에 있었다. 이제 부모 세대를 위로 하고, 후손들을 위해 내가 축제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대를 이어오는 유등의 꿈을 이어받은 세대로서 나름대로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호 역시 학창시절 꿈을 유등으로 만들어 남강 물에 띄우던 추억에 잠겼다.

빙긋이 미소 짓던 준호는 추억 속을 관통하여 상상에 빠져 들었다. 수수깡과 문종이로 만들어 촛불로 밝힌 아버지의 꿈과 나무젓가락과 색종이로 만들었던 유등은 세상이 바뀌어도 같은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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