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26)
<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26)
  • 경남일보
  • 승인 2013.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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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추억에서 빠져 나온 준호는 가족들이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멋진 축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철없던 학생이 자라서 어엿한 젊은이가 된, 그 세월의 차이만큼이나 새롭게 달라진 유등을 만들어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유등축제로 발전시켜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남강에 띄우는 유등은 단순한 유등이 아니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나와 내 후손들의 꿈과 삶을 등불로 밝히는 유등은 하나의 역사였다. 준호는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유등을 만들어 태어날 자식들에게 자랑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자 유등축제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단순히 보고 즐기는 소비자에서 창조하는 사람이 돼보자.”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따라 굳은 얼굴이 펴지고 젊음이 일렁거렸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고 시시하지만 학창시절 순수했던 그 시절 그 설렘이 없어진 게 참으로 안타까웠다. 대를 이어온 유등의 꿈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신할 것인가 하는 의문에서 출발한 상상은 끝없이 뻗어 나갔다. 남강 물위에 떠있는 수많은 유등이 형형색색의 불을 밝히며 빛나는 별처럼 밤을 밝히는 순간을 아이템으로 잡았다.

준호는 남강 물위에 유등 놀이공원을 만들고 싶다는 상상을 구체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유등축제 때 여기저기 떠 있던 유등을 보았던 기억을 되살려 환상적인 유등 나라 놀이공원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상상을 낙서처럼 긁적이며 후손들을 위한 유등 놀이공원 그림을 그려 나갔다.

준호는 새내기 시절 축제의 설렘을 만끽하고 싶어 조용히 눈을 감았다. 순박했던 새내기 민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민지와 데이트할 때 유등 놀이공원에 가는 상상을 하면서부터 유등 놀이공원의 모든 유등이 준호의 상상력을 에너지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준호 유등은 민지 유등의 손을 잡고 거대한 진주성문 입구 유등 불빛 속으로 들어갔다. 눈부시게 빛나는 거대한 촉석루 유등을 향해 준호 유등과 민지 유등은 달려갔다. 거대한 촉석루 유등 마루에 올라간 민지 유등의 머리카락은 불어오는 오색 불빛 바람에 무지개빛을 내며 흩날렸다. 민지 유등은 가슴을 활짝 열고 오색 불빛 바람을 가슴 깊이 들이쉬고 있는 준호 유등의 손을 꼭 잡았다. 준호 유등은 무지개빛으로 흩날리는 민지 유등의 머리카락을 쳐다보며 미소 지었다.

판타지 소설 같은 상상을 끝낸 준호의 머릿속에는 새내기 시절 동아리 방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두고, 깊은 이야기까지 나누던 민지와 서로의 미래를 공유하던 꿈 많았던 캠퍼스가 스쳤다. 로봇을 만들어 남강 변에 매달아 놓고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한참을 우러러보며 다음에 저 로봇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던 순간의 부푼 꿈이 어디로 사라졌을까 싶어 안타까웠다.

“지금 그 당시 로봇 유등을 만든다면 어떻게 하지.”

준호는 학창시절 친구들과 며칠 동안 로봇 유등을 만들었던 경험담을 자랑할 때마다 신기한 눈빛으로 보던 민지의 호기심 어린 표정을 좋아했다.

“내가 만든 로봇 유등이 제일 좋다고 했는데…”

좋았던 시절 추억에 가슴이 저렸다. 화사하게 웃던 민지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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