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나그네의 삶…윤대녕 새 소설집
피할 수 없는 나그네의 삶…윤대녕 새 소설집
  • 연합뉴스
  • 승인 2013.09.0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곱 번째 소설집 ‘도자기 박물관’ 출간
“삶의 길을 잃고 헤매던 젊은 날이 있었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덧없는 꿈이니 고독한 환상이니 화염 같은 고통이니 하는 말들이 두서없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렇게 길을 잃었었기 때문에 어쩌면 사랑이 가능했고 가까스로 삶의 길을 찾을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윤대녕(51)의 일곱 번째 소설집 ‘도자기 박물관’의 수록작 ‘반달’의 한 대목이다. 아비 없이 사생활 분방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화자의 얘기다.

이제는 결혼해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가는 아이까지 둔 화자지만 젊은 시절 ‘단 한 번의 예외적인 사랑’을 기억한다. 새우잡이 배를 탄 동성의 대학 동기를 찾아가 밤바다에서 사랑을 나눈 일이다.

이 사랑을 기억하는 건 상대가 동성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젊은 날의 허기와 막막함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대학 가고 군대 가고 복학해서 취업하는 모두의 경로를 따라가다가 삶의 의미도 방향도 찾을 수 없어 쓸쓸함이 북받치는 시절이었다.

어찌어찌 무던하게 밟아온 삶의 경로를 무작정 이탈해 여기저기 휩쓸리고 얻어맞다가 어느 즈음엔 나그네 생활을 접는 ‘반달’ 속 화자 같은 사람이 있는데 비해, 평생 마음의 정처(定處)를 찾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트럭 행상을 하는 표제작의 주인공 같은 사람이 그렇다.

넉넉지도 않은 형편에 ‘그’는 눈에 띄는 도자기를 사 모아 트럭에 싣고 다닌다. 본인의 말처럼 “딱히 용처가 있는 게 아니라, 그저 가까이 품고 있음으로써 이 서글프고 고단한 인생을 부지하려는 것”(107쪽)이다.

‘불을 견디는 심정으로 살되, 내 삶은 백자처럼 아무 무늬가 없어도 좋다’는 ‘그’의 처연한 말을 조수석에 앉은 아내는 되받아친다. “염병할!”

아내의 말은 속되지만 틀린 게 없다. 하지만 툭하면 닥쳐오는 삶의 근원적인 허전함을 끝내 외면하지 못하는 ‘그’로선 어쩔 수가 없다. 타인과 사물에 의탁해도 더욱 깊어지기만 하는 마음의 빈자리가 소설집 곳곳에 선연히 드러난다.

소설집엔 모두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렸다. 윤대녕은 ‘작가의 말’에 “마지막 교정을 보는 과정에서 여전히 대부분의 소설들이 길 위에서 쓰여졌음을 확인했다. 그래서 내게는 길이 곧 집(우주)이라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고, 여로에 서 있음이 나의 운명임을 수긍하기에 이르렀다”고 적었다.

문학동네. 320쪽. 1만 3000원.

연합뉴스

도자기 박물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