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28)
<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28)
  • 경남일보
  • 승인 2013.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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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량한복 위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준호를 지긋이 쳐다보며 말했다.

“우선, 마음속으로 사랑을 그려.”

조용히 눈을 감고 상상에 잠겨 있는 준호의 귓전에 대고 속삭였다.

“그림이 나오면 그걸 유등으로 만들면 최고 걸작품이 되는 거야.”

민지 유등을 만들기 위해 하루 종일 유등 만드는 법을 배우고 돌아왔다. 생각보다 힘겨웠지만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랑하는 민지를 내손으로 직접 만들어본다는 행복감에 손끝에까지 가슴속의 사랑이 묻어났다.

“사랑과 영혼의 주인공.”

준호는 민지와 같이 DVD 방에서 본 영화가 떠올라 빙긋이 미소 지었다. 민지 유등을 만드는 며칠 동안 준호는 사랑이란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민지를 이해하는 폭이 더욱더 깊어졌다.

준호는 사랑하는 민지 유등을 만들어 방에 갖다놓고 불을 밝혔다. 보고 싶은 민지 유등을 완성하고 첫 불을 밝힌 기념으로 민지 유등 앞에서 양팔을 한껏 위로 치켜 올려 하트 모양으로 하고 셀카를 찍어 민지에게 보냈다. 수신메일 확인함을 매일 여러 번 확인했지만 며칠 동안 민지는 메일을 읽지 않았다. 완전히 헤어지기로 다짐했나 싶어 서운할 때마다 무지개빛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민지 유등과 같이 있어 견딜 수 있었다. 일주일 되는 날 한밤중에 민지가 메일을 읽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답장은 없었지만 준호는 민지 유등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손으로 정성을 다해 만든 민지 유등을 보며 유등의 꿈을 같이 준비했던 추억속의 민지를 떠올릴수록 사랑은 깊어갔다.

세월이 흐를수록 민지가 떠난 빈자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새내기 시절부터 세상을 배우는 동안 함께 꿈을 키우며 무르익었던 사랑이 떠나고 홀로 남은 준호에게 마음을 기대고 서로 힘을 북돋워가며 술잔을 기울였던 삶의 동반자의 빈자리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깊게 파여 들었다.

민지와 자주 갔던 진주유등 중앙시장 먹자골목에서 혼자 마신 소주에 취한 준호는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은 깊은 밤중에 민지 유등을 끌어안고 포옹하며, 민지처럼 꼭 끌어안아주기를 기대했지만 민지 유등은 빙긋이 웃기만 하고 가만히 있어 썰렁 했다. 포옹해줘도 가만히 있는 민지 유등이 왠지 어색한 기분이 든 준호는 어떻게든 성공해서 민지 앞에 나타나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민지야, 안아달라고.”

사랑의 욕심인가? 보고 싶은 마음이 사무쳐가는 것일까? 옛날에는 안아주면 민지는 더 꼭 끌어안아 주던, 그 좋았던 시절이 아른거려 미칠 것 같았다.

“마네킹처럼 가만히 있는 민지는 싫어.”

준호는 민지 유등이 자신을 꼭 끌어안을 수 있도록 팔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만들기로 했다. 창작등 연구소에서 소개해준 유등 제작업체 사장의 도움을 청했다. 젊은 친구가 사랑하는 여인의 유등과 포옹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한 사장은 준호에게 직접 만들라고 했다.

“나를 끌어안으면 곤란하지.”

준호는 빙긋이 웃으며 난처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속마음을 담아 농담을 했다.

“사랑한다면 포옹은 해야 하는 게 맞죠.”

사장이 가르쳐 주는 대로 용접봉을 잡고 불꽃을 튀기며 반갑게 포옹하는 민지 유등을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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