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30)
<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30)
  • 경남일보
  • 승인 2013.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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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 물위에서 춤추는 상상에 빠져 있던 준호는 벌떡 일어나 민지 유등의 손을 잡고 서툰 막 춤을 추기 시작했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강물을 튀기며 신명나게 한마당 춤판을 벌였던 준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잔잔한 물결 따라 흐르는 브루스 음을 타기 시작했다. 민지 유등의 손을 잡고 가는 허리를 휘감아 유유히 흐르는 남강 물결에 따라 브루스를 추기 시작했다. 물결을 튀기며 턴 할 때면 민지 유등의 무지개빛 머리 결이 강바람에 흩날렸다.

강물 위를 흐르던 브루스 음률이 물속으로 스며들어 흐르면 민지 유등은 준호의 어깨너머로 턱을 밀치며 준호의 볼에 따스하게 기대었다.

준호는 학창시절 참여했던 가장행렬 추억을 떠올리며 임금의 화려하고 품격 높은 행차를 그린 그림을 참고로 해 봉황 행렬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도심을 행진할 때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손을 흔들 때 왠지 뿌듯한 자부심으로 어깨가 으쓱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큰 도화지를 여러 장 붙여 길게 만든 두루마리 종이를 방바닥에 펼쳤다. 맨 앞에 봉황 깃발을 세우고, 중앙에 큰 봉황 그림을 오려 붙여 배치했다. 그 사이에는 수많은 만장을 그려 넣었다. 바로 뒤로 흥을 돋우기 위해 풍물단을 배치했다. 봉황을 태운 마차를 끌고 갈 동네사람들을 좌우로 그려 넣고, 한복을 곱게 입은 동네 아낙들이 봉황의 긴 꼬리를 붙잡고 뒤따르게 했다.

며칠 뒤 동네 어귀에 있는 아저씨 사무실로 갔다. 큰 도화지 두 장을 붙인 종이 두루마리를 테이블에 펼쳤다. 중앙에 봉황을 중심으로 마치 임금님의 행차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을 본 아저씨가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억수로 크네. 이 많은 사람들 우찌 모으노. 이리 크게 만들 돈은 또 오데 있노.”

“동네사람들 최대한 많이 참여시키고예. 풍물패가 앞장서고예. 봉황 유등은 제가 어떻게든 만들어 볼께예.”

“이리 많은 한복은 어디서 구하것노. 준호 임마야, 이건 못 해내것다.”

“동네사람들이 힘을 합치면 할 수 있습니더.”

“치아라. 그때 돈도 정리 못하고 안면으로 때았는데 또 손 벌리면 누가 조타쿠나.”

아저씨의 가슴속에도 옛날 잘나갔던 동네의 명성을 되살리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동네를 위한 일인데 사람들이 나설 겁니더.”

“모르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동네사람들한테 멱살 잡히고 욕 문거 생각하모 지금도 잠이 안 온다 아이가. 임마야, 이대로 하모 동네에서 쫓겨나고 말 끼다.”

“봉황을 보게 되면 동네사람들이 달라질 겁니더. 가슴속 봉황은 어쩌고요?”

“그야 그러치만서도. 그 놈의 장닭 목을 비틀어 잡아 묵지도 못하고…하, 참.”

봉황이 살던 동네가 점점 낡아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몇 년 전 봉황 만들기에 앞장섰지만, 그 책임을 혼자 짊어지고 마음고생을 몇 년 하고 있었다.

테이블 위 행렬도를 양손으로 잡아 올리는 아저씨의 눈가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 “봉황이 날면…”

천천히 일어난 아저씨는 입에 물고 있는 담배를 우물우물 옆으로 밀치며 사무실 벽 쪽으로 걸어갔다. 작은 사무실 중앙 벽면에 그림을 들이대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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