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32)
<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32)
  • 경남일보
  • 승인 2013.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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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는 봉황 머리와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긴 꼬리 여러 가닥을 그리고, 오색 날개를 그렸다.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봉황 그림을 완성한 준호는 축제 당일 봉황이 날아다닐 비행 동선까지 그렸다. 동쪽에서 전설속의 청룡이 날아오르고, 하늘을 유영하던 봉황이 촉석루 지붕 위를 몇 바퀴 선회하다 지붕위에 내려앉아 오색음색으로 축제의 환희를 노래하는 그림을 상상했다. 행복한 미소를 짓는 준호는 다음 이벤트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아 모든 유등이 오색 불빛을 내는 가을밤이 되면 청룡과 봉황 유등이 밤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도록 유등 환타지아 이벤트의 동선을 그렸다.

준호는 물과 불, 그리고 빛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소설처럼 환상적인 꿈의 축제를 만들고 싶었다. 봄부터 살아 움직이는 유등 프로젝트를 준비해온 준호는 유등 제작업체를 찾아가 색연필로 스케치한 비행선 봉황과 청룡을 보여주었다.

“평생 동안 유등을 만드셨잖아요, 최고잖아요. 서울 놈들 기를 꺾어 주세요.”

유등 제작으로 겨우 생업을 유지했지만 평생을 유등 만들기에 매진했던 사장은 왠지 이 계획서를 기다리며 평생을 바쳐 유등 만들기를 했던가 싶어 눈시울이 붉어졌다. 유등의 맥을 이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재산을 털어 매년 새로운 유등을 만들어 한 해 한 해 유등축제를 발전시켜 온 사장의 오랜 꿈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사장님의 꿈이잖아요.”

“모처럼 마음에 드는 거 해 보고 싶으니까 돈 이야기는 꺼내지 마. 내가 돈에 눈이 멀어 꿈을 망쳤지. 나름대로 예술품을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살았는데…”

창작등 제작에 최고 기술자라는 자부심으로 일을 할 때는 흥미로웠다.

“돈벌이축제 하려는 잡것들이 평생 일군 노하우를 하루아침에 약탈해서 유등축제 자체를 망쳐 놓았어. 속은 것보다 유등 망쳐 놓은 잡것들을 생각하면…”

사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과거를 잊을 수 있지만 미래까지 약탈해간 것들을 생각하면 유등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젊은 친구가 유등의 꿈을 잇는 게 고마웠다.

봉황이 난다는 소식에 동네사람들 마음속에서 희망의 불길이 일었다. 옛날부터 동네일이라면 앞장섰던 전통풍습이 되살아나면서 조용하던 동네가 활력을 찾았다.

“큰 인물이 많이 난다고 사람을 보내 봉황을 쫓아 보냈다 아이가.”

경로당을 찾은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봉황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후손들은 봉황이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봉황이 알을 품을 수 있는 봉알자리도 만들어 관리하는 등 지극정성을 다했고.”

봉황 행렬 준비로 활기가 넘쳤고, 봉황이야기는 구체적으로 완성되고 있었다.

“진주가 좋은 곳인 건 분명해.”

경로당 앞을 지나가다 동네사람들이 모여 봉황 행렬 만드는 것을 보고 집에 들어선 아내는 방에 처박혀 TV 재방송만 보고 누워 있는 남편 등짝을 밀었다.

“가보이소, 누버서 딩굴지만 말고예.”

“뭐 하러, 실컷 고생하고 욕 묵는 짓 안 할란다.”

“욕하는 것들은 오데로 가나 욕해요. 원래 하지도 않는 것들이 욕을 더 마이 합니더. 욕이 무서버 안할 끼요, 못난 인간들 신경 쓰지 말고 동네일인데 가서 힘을 보태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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