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33)
<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33)
  • 경남일보
  • 승인 2013.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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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가장행렬 준비할 때 열심히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욕뿐이었다. 동네 잘 되라고 봉사했는데, 한패로 몰려 손가락질 받은 기억을 지울 수 없었다.

“똑똑한 것들이 천진데 뭐할라꼬. 마, 치아삐라, 내가 할 게 뭐 있겄노.”

“손 하나 거들면, 세상이 달라지요.”

“고만 해라. 시끄러번게.”

“아, 퍼떡 가보이소.”

식육점 강 사장은 아내 등쌀에 못이기는 척 일어나 경로당 앞으로 갔다. 몇 년 전 싸우고 원수처럼 지내던 중국집 김 사장이 짜장면과 탕수육을 찬조했다는 소문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머스마가 크게 놀아야지.”

강 사장은 돼지 한 마리를 내놓는다고 동네 어른들 앞에서 약속했다. 몇 년 동안 따돌림 당하며 지냈던 아내는 돼지 내장을 썰고, 소주 몇 병 들고 경로당으로 갔다.

“정 사장이 뭔 잘못이 있노. 세도가 따라 다니는 온갖 잡새들이 조잘거려 망쳤지.”

“그때 뭐가 씌었던 것 같아예.”

남편이 동네사람들과 사이좋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기분이 좋았다. 아내가 몇 년 전 동네사람들에게 사과하는 것을 본 강 사장은 마누라 하나는 잘 봤다 싶었다.

점심 배달을 마친 중국집 김 사장이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아따, 뭐 할라꼬 왔소. 와 또 싸울라꼬 온 기요.”

식육점 정 사장을 보자마자 중국집 강 사장이 눈에 불을 켜고 거품을 물었다.

“확 구마.”

몇 년 동안 참았던 강 사장은 이참에 정리하자 싶어 웃옷을 확 젖히고 나섰다.

“어른들 앞에서 뭐하는 기고, 알 만한 사람들이… 고만하고 치아라.”

경로당 어르신들이 누구라 할 것 없이 똘똘 묶어서 호통 쳤다.

“잘 할라쿠다 보이 그런 기지, 한 동네 살면서 원수지면 써나. 둘이 악수하거라.”

저만치서 마음 졸이며 지켜보던 아내가 눈을 찔끔 감으며 악수하라고 독촉했다.

“미안소.”

“아이요, 내가 미안소, 잘할라꼬 하다보이… 마음 푸소.”

두 사람은 악수를 했다. 이렇게 쉽게 풀어질 이웃 사이지만 누가 나서서 화해시켜주는 사람이 없어 몇 년 동안 원수처럼 지내면서 마음고생만 했다.

몇 년 앙금을 털어버린 아내는 개운한 듯 가장행렬에 참여할 거라며 시집올 때 입었던 낡은 한복을 꺼내 거울 앞에서 패션쇼를 했다. 이참에 한 벌 해 입을까 싶어 고민을 했다. 몇 년 안에 애들 결혼할 때 유행이 지나서 다시 해 입어야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집올 때 입었던 한복을 쳐다보니 그 동안 먹고 사느라 변변한 한복 한 벌 못해 입은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길 건너 세탁소에 오래 된 한복을 맡겼다. 세탁소 아저씨는 한복 세탁을 하느라 분주했다.

“한복은 억수로 비싸지예?”

“축제 참가하는 사람은 공짭니더.”

“그래가꼬 돈은 언제 벌라꼬예.”

“동네일인께, 나는 다리는 사람 아이가. 전부 갓꼬 오소. 까짓꺼 굼지머.”

“담에 우리 아아들 오면 가라 쿠께예.”

갑자기 동네 인심이 후해졌고 골목마다 웃음꽃이 만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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