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34)
<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34)
  • 경남일보
  • 승인 2013.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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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동네를 위해 봉사하겠다며 온 동네가 나섰다. 봉황을 태울 가마에 합판을 대고, 옆에서 끌고 밀 때 사용할 손잡이에 광목을 감았다. 몇 사람이 앞뒤로 서서 봉황을 태울 가마를 시운전하고 있을 때 ‘덩덩 덩덕쿵’ 풍물패 무리가 연습을 마치고 들이닥쳤다. 동네사람들은 풍물패 장단에 맞춰 덩실 덩실 어깨춤을 추며 봉황을 태울 가마 주위를 맴돌며 한바탕 놀았다. 가장행렬을 무사히 마치려면 봉황을 태울 가마가 아무 탈 없이 잘 굴러가야 했다.

다음 날은 봉황 깃발을 앞세우고, 동네 한 바퀴 돌면서 가장행렬 연습하고 막걸리 잔치하면서 밤늦도록 개천예술제와 유등축제에 전해 내려오는 꿈 이야기를 했다.

준호는 꿈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생각했다. 준호는 아버지나 자신처럼, 사춘기 시절부터 뭔가 꿈을 가졌던 깨어 있는 사람들이 세상의 등불이라고 생각했다.

“꿈을 이루게 해준 삶의 텃밭인 고향. 철없던 시절 유등의 꿈을 꾸었을 사람들.”

준호는 고향에서 품었던 꿈을 이루어 성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상공회의소에서 진주가 고향인 사람들의 명부를 구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출향 인사 명단도 구했다.

“너무 평범하네.”

새내기 시절 평범한 것은 인생에서 대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에서 단순히 높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제외시켰다.

“대단한 것 같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꿈을 이뤘다고 하는 게 아니다.”

준호는 어떤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동창회 사무실에서 선배들 연락처가 있는 총동창회 명부를 구했다.

엄청난 두께의 명부를 하나하나 분석하고 연락해 확인했다. 평범한 성공은 많았지만 진정한 성공을 이룬 사람은 드물어 애를 먹었다. 어느 날 유등의 꿈 프로젝트와 연결시킬 수 있는 기업체를 찾는 이야기 끝에 어느 선배가 귀띔 해준 풍력 발전기 회사를 운영하는 선배를 찾아갔다.

“선배님, 에너지 절약을 위해 강바람 풍력 발전으로 유등에 불을 켜 주세요.”

“그 괜찮기는 한데, 우째서 나를 찾아온 기고?”

“선배님 학창시절에 풍차 유등 만드신 거 알고 있습니더.”

“뭐라꼬? 니 귀신이가. 그걸 우찌 아는데?”

“갠?d니더. 선배님의 학창시절 꿈이 풍력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짐작했지예.”

선배는 벽에 걸린 사진을 힐끔 쳐다보고는 씩 웃으며 끄덕였다. 개천예술제 때 풍차 유등을 띄우는 흑백사진이 벽에 걸려 있었다. 개천예술제 때 찍은 흑백사진 속에는 갓을 쓴 할아버지와 남자 아이들 세 명이 남강을 배경으로 서 있었다. 나란히 걸린 큰 칼라 사진을 본 준호가 일어났다.

“가족사진입니꺼?”

사장은 빙긋이 웃으며 지나가는 말처럼 중얼거렸다.

“하, 우리 아아들 창작등 경연대회 상탄 기념으로 한방 박았다 아이가. 자세히 봐바라. 창작등은 하나같이 다른 게 참 신기하제. 절마들 꿈이라는 생각을 하면, 애린 것들이 참 기특하다 아이가. 부모 노릇할라꼬 걸어 논기라. 자식새끼들 꿈을 잃어버리지 않을라꼬 잘 비는데 걸어놓고 틈나면 본다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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