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35)
<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35)
  • 경남일보
  • 승인 2013.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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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마음은 똑같구나 싶었다. 아버지도 부모 노릇하느라 가족들 데리고 개천예술제때부터 유등축제까지 매년 남강 변에서 동동주 마시며 유등의 꿈을 이야기하던 추억들이 떠올라 코끝이 찡했다.

“아, 그라고. 후배는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리 추리를 하는 기라?”

“저희 아버님이 가르쳐 준 비법입니더.”

“그라고 보니까, 나이가 내 아아들하고 엇비슷하것네.”

준호를 쳐다보는 선배의 눈빛은 아버지의 눈빛이었다.

자세를 고쳐 앉은 선배의 자세가 자식 앞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아버지가 유등의 꿈 이야기할 때와 너무나 비슷하게 진지해서 푸근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철딱서니 없던 시절 아이가. 멋모르는 기 고향 사람들 앞에서 내 꿈이라고 큰소리쳤다 아이가. 유등 불빛 밑에서 친구들하고 다부진 꿈을 이야기 한 긴데 내 평생을 받쳤다 아이가. 그 참 다부진 기라. 아아라꼬 뭘 알것노 하것지만서도 야무진 꿈은 포기되지 안터만은. 한참 클 나이에 지 꿈을 어떤 식으로든 뚜렷하이 그리봐야 하는 기라. 큰 그림이 그리져 있어야 하는 기라.”

선배 사장의 눈빛에 철없던 학창 시절 학생처럼 장난기가 감돌았다.

“그때 쭈겐은 기 뭘 알았것노, 그자? 수수깡을 꺾어 실로 묶어 갔고, 헌 문종이에 밥풀을 칠해 붙이 갓고 풍차 유등을 맹글었지. 호롱불 밑에서 스치는 바람을 가꼬, 전기불 켠다고 웃기는 소릴 하고 있는 기라. 책을 본께 진짠기라. 미쳐삐것데.”

또 다른 아버지였다. 어쩌면 선배는 같은 자식이라고 생각하겠구나 싶었다. 유등축제 때마다 먹거리 천막에서 파전과 순대를 안주로 동동주 마실 때 매년 아버지가 자랑삼아 이야기한 유등의 꿈을 또 다른 아버지, 선배가 너무나 똑같아서 킥킥 소리 내 웃었다.

“와, 우습나.”

“죄송합니더. 저희 아버님 생각이 나서예.”

또 다른 아버지, 선배는 같은 자식 앞에서 또 케케묵은 옛날이야기 했구나 싶은 듯 얼굴을 붉히며 턱을 어루만지다 씩 웃었다.

“하나같이 유등의 꿈 이야기를 해주는 기라예. 학창시절에는 누구나 꿈을 만들어 남강에 띄웠지예. 철없던 시절 유등의 꿈을 이룬 분들은 인생에서 성공한 거지예.”

준호는 꿈을 이룬 선배의 인생 앞에 숙연해졌다. 후배가 일깨워준 옛날 유등의 꿈이 오늘의 성공을 이루게 된 밑천이 된 것이 참으로 신기하고 뿌듯했다.

“참 희한하제. 누가 시킨 것도 아인데, 그자.”

준호는 꿈을 이룬 선배들 주소를 파악해 초청장을 별도로 보내기로 했다. 철없던 학창시절 추억이 떠오르면 꼭 참석할 것이다. 성공한 인생의 밑거름이 된 유등의 꿈이 흐르는 남강 변을 찾아오지 않고 못 배길 것이 분명했다.

유등 불빛 아래서 동동주 잔을 기울이며 철없는 시절 이야기꽃을 피우는 게 사는 재미일 것이다. 전화 연락이 되는 선배들에게는 학창 시절의 꿈을 찾아오라고 설득했다.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던 시절 인생의 등불을 밝혀 준 게 유등의 꿈이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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