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36)
<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36)
  • 경남일보
  • 승인 2013.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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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하고 귀농해 텃밭 일구는 선배는 개천예술제부터 시작해 유등축제 때마다 객지 나간 고향 친구들까지 불러 모아 유등 불빛 아래서 꿈을 이야기한다고 했다.

유등 예술가를 꿈꾸던 민지는 출세하기 위해 서울로 가 창작등 연구소에서 배운 기술로 S엔터테이먼트에 취직했다. 축제 분야 대기업으로 1군 중에서 최고 잘나가는 S엔터테이먼트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새로운 유등을 만들어 등 축제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었다. VIP 형님의 배경과 탄탄한 인맥을 갖춘 대기업에 경쟁자는 없었다. 매년 예산을 크게 증액하는 등 축제를 독차지하며 승승장구 했다.

민지가 근무하는 서울 S엔터테인먼트 박 회장의 아들 박금수는 지난해 받지 못한 이자를 받으려고 진주에서 30년 동안 유등을 제작하고 있는 정 사장 사무실을 찾아왔다. 매년 불어나는 이자 대신 싼 값에 후려치기 한 진주 유등을 가져가 등축제에 사용해서 이중으로 돈을 벌고 있었다.

매년 초가을에 박금수가 유등을 가지러 오는 날이면 정 사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평생을 연구하고, 전 재산을 투자해 키운 자식 같은 유등을 성공시켜 주겠다는 대기업이 쥐어주는 푼돈에 눈이 멀어 팔아버린 지난날의 잘못을 평생을 두고 갚아야 했다. 정 사장은 자식들을 떠나보내는 찢어지는 가슴을 달랠 길 없어 며칠 전부터 술에 취했고 결국 어제 사라졌다.

민지 유등을 만든 인연으로 날아다니는 봉황 유등을 만들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드나드는 정 사장의 비닐하우스 작업장으로 가는 준호 앞을 박금수가 가로막았다.

“듣던 대로군, 하~하~!”

아랫배를 쑥 내밀고 팔짱을 낀 젊은이가 찢어진 청바지에 티를 걸친 남루한 차림의 준호를 위아래로 흘겨보며 콧방귀를 뀌고 실실 히죽거리다 말을 이었다.

“너, 정신 못 차리고 꿈속을 헤맨다는 준호 맞지?”

덩치 큰 경비업체 직원들을 거느리고 가랑이를 벌리고 턱을 내민 꼴에 준호는 시건방진 놈이다 싶어 상대하기 싫어 계속 걸었다.

“민지는 서울이 환상적이래. 골프 끝나고 한잔 할 때 진주 촌놈들 욕하는 재미에 퍼 마시다 취하면 널 원망하고… 웃기는 계집애야.”

민지 소식을 들은 준호가 멈칫 섰다. 심호흡을 하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누가 궁금하다고 했나?”

한 여자를 두고 세상 모든 남자들은 경쟁 대상이기 때문에 시건방진 놈이 전하는 민지 소식은 믿을 게 못 된다 생각하고 무시했다.

“진주 유등을 싹 쓸어가려고 왔는데. 이건 궁금하겠지?”

“약탈하려고 대기업까지 내려 보내고 총 공격을 하는구나. 아무리 지랄을 떨어도 진주 유등한테는 쨉도 안 돼. 남강 유등은 이미 경지에 올랐어.”

준호는 유등을 약탈해가는 놈들에 대한 분노를 삼키느라 애썼다.

“야! 제법 거지꼴이네. 축제 한답시고 예술가 행세하는 꼬락서니가. 쯧쯧~”

절망하는 낌새가 없자 입술을 비튼 금수가 준호 뒤통수에 대고 말을 이었다.

“축제가 왜 이리 조잡해? 촌스럽고 유치하기는…”

어디서 구했는지 축제 팜플렛 초안을 준호 코앞에 대고 흔들었다.

“촌놈들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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