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38)
<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38)
  • 경남일보
  • 승인 2013.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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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장 어디를 가나 짜증나게 하는 이야기는 하기 싫어 유등을 쓸어 담는 금수 뒤통수에 대고 매섭게 쏘았다.

“그 따위로 하고 있으니 욕먹지. 그게 축제야?”

천천히 돌아선 금수는 승리자의 기쁨을 만끽하는 듯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들만의 축제라는 말도 못 들어 봤어? 공짜 구경하는 사람들이 무슨 의미를 가질 거라고, 공짜 구경이 그렇고 그렇지. VIP가 바뀌면 축제 전체가 바뀌잖아. 구경꾼들과는 상관없는 거야. 성공한 VIP가 베푸는 만찬이니까.”

허리춤에 양손을 걸친 준호는 마치 VIP라도 된 듯한 표정의 금수를 쏘아보았다.

“그래서 VIP 즐겁게 하려고 남이 성공시킨 축제를 베끼고 지랄이야. 그러고도 예술 한답시고 나불거리겠지. 부끄럽지도 않아? 세계적인 축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개망신이야.”

금수는 실실 웃으며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이마 잔주름을 잡아 치뜨고 말했다.

“VIP가 원하는 건 뭐든 해야 일 잘하는 거야. 예술이니 축제니, 다 필요 없어.”

트럭에 실린 유등을 보는 준호의 눈가 경련이 일었다. 약탈한 축제를 망칠 게 뻔했다. 축제에 대한 기본 마음자세도 없는 것들과 상생하겠다는 생각은 공멸할 게 분명했다. VIP가 바뀌면 축제 본질까지 변질시키는 잡것들이 좋은 축제를 망치려 작정을 하는구나 싶었다.

막상 유등을 가져가는 걸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 준호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남의 꿈을 약탈해오라고 VIP가 시켰어? 고작 VIP 기분 맞추려고 좋은 축제 망치려고 개지랄이야. 원하는 게 뭐야?”

금수가 턱으로 준호를 지적하자 경비업체 직원들이 준호 주변을 에워쌌다. 왼쪽 양복 위를 툭툭 치며 준호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돈 벌려고. 그 뿐이야.”

“약탈한 걸로 돈벌이축제를 하겠다고?”

“그럼, 공짜가 어디 있어. 세상 인간들이 봉사하는 것도 어떤 식으로든 이익을 챙기려는 얄팍한 수작일 뿐이야. 위로한답시고 악수나 하고, 사진 찍고는 도망치듯 가버리고, 남은 사람들만 불쌍하지. 알량한 희망을 부추겨 놓고 가버리면 헛바람 든 촌놈들 방황하게 만들지. 이것도 저것도 없는 자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거야. 가진 자들 잔치에 들러리 서는 게 전부야. 모델료 몇 푼 쥐어주고 떠나는 순간 잊어버린다고. 가진 자들은 애당초 그런 생각 없이 악수하는 거야. 아무 생각도 없는 것들에게 기대를 가지고 있으니 매번 그렇게 놀아나지.”

새파랗게 젊은 놈이 돈으로 세상을 통달한 듯 우쭐대는 쌍판에 침을 뱉고 싶었다.

“좋은 축제가 망가지든 말든 돈만 벌겠다고.”

“왜 그렇게 못 알아들어? 답답하네, 정말. 그러니 돈을 못 벌지. 돈을 귀하게 대접해야 부자 되는 거야. 축제와 아무 상관없다니까. 단지 VIP가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걸 일치시키는 게 핵심이야. 요즘 세상은 돈을 내는 사람에게 VIP 대접하잖아. 수천만 명의 구경꾼들이 몰려들지만 정작 돈을 내는 사람은 VIP 뿐이야. 돈을 내는 사람이 VIP고, 돈이 대접 받는 VIP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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