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39)
<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39)
  • 경남일보
  • 승인 2013.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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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놈이 VIP라는 작자 따라 다니면서 참으로 더러운 것만 배웠구나 싶었다. 유등으로 가득 차 있던 창고가 텅 빈 것을 보자 허탈해진 준호가 마지막 유등을 들고 나오는 인부들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경비업체 직원들이 준호의 양팔을 잡고 길을 틔우고 마지막 유등을 트럭에 실었다.

“VIP라는 그 작자 말이야. 약탈한 유등축제가 어떤 건지 알기나 하는 거야?”

“VIP는 어떤 축제인지는 관심 없어. 돈에 관심이 많은 건 확실해.”

VIP라는 작자 주변에 돈 밝히는 잡것들만 모여 있으니 약탈하는 것도 잘한 짓이라고 상을 내릴 것이다 싶었다. VIP라는 작자가 원하니까 잡것들만 주워 모았겠지 싶었다.

“그러니 돈에 환장한 것들이 VIP를 위해 박수치는 난장판이지. 유등축제가 뭔지도 모르는 것들이 인기 있다고 무조건 약탈해 놓고 보자는 지저분한 것들. 유등축제는 달라. 단순 구경꾼들이 아니라고. 온 가족이 참여하고, 모두가 꿈을 펼치며, 가치와 의미를 찾아 남강으로 오는 거라고.”

대형 트럭에 실은 유등을 밧줄로 묶는 것을 쳐다보는 준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거창한 예술을 하려는 가 본데 돈 없으면 축제도 못 하는 거야, 촌놈아!”

불편한 진실 앞에 유등축제의 꿈을 갈기갈기 찢어 남강 물에 집어 던진 악몽이 떠올랐다. 축제 위원장에게 배운 불편한 진실이 따랐다. 금수가 따라다니는 VIP들이 탄생시키는 야망의 자식들이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피 땀을 흘려야 혼으로 승화되는 거야. 돈을 아무리 처발라도 베끼는 건 축제도 아냐. 도대체 나라 꼬라지가 어떻게 될 건지 암담하다. 힘없는 사람들 돕겠다고 큰 소리 치기만 하면 출세하니. 당장 쪽박을 채워 나라 밖으로 추방해야 될 텐데 어떻게 된 건지 같이 즐기고 있으니. 똑같은 것들이 나라 한복판을 차지하고서는 상생하자고 나불거리니까 소가 웃는다.”

7만 영혼들이 나라를 지키려고 목숨 걸고 싸운 넋을 기리려고 지극정성으로 불 밝힌 유등을 약탈하고도 반성은 없고 오히려 우롱하는 주인행세에 분노가 솟구쳤다.

“정신 똑바로 박힌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실망했어. 나라가 개탄할 일인데.”

성공한 축제를 약탈해서라도 세계적인 축제로 성장시켜 자신들의 치적으로 삼아 출세하려는 술책이 뻔히 보였다.

약탈을 정당화시키고 있는 국제적 망신의 선봉장의 철학 중에 ‘지역 갈등을 만들지 않는다’는 개소리가 있다. 수염을 길러 눈속임해서 성공한 경험을 재탕하려고 상생하자는 위선의 가면을 쓰고 국제적 사기꾼 행세를 하며 실실 순박한 척 웃는 꼴이 떠올라 구역질이 났다.

“VIP 자격도 없는 게 국제망신을 자처하고도 실실 웃기는.”

평생을 만들어 온 유등을 싼 값으로 후려쳐 창고를 통째로 비우는 것을 본 준호는 치가 떨렸다. 지방의 약자들을 멋대로 약탈해가는 오랜 역사를 반복하고 있었다.

“서울 사람들만 사람이가. 지도 촌놈 출신이면서.”

부모 형제들이 있는 고향은 안중에도 없이 국제적인 도시가 되겠다는 야망에 눈 먼 호로자식들이 고향을 약탈한 역사는 반복될 뿐이고, 언제나 궁색하게 변명하는 역사적 책임에 대해 책임지는 자는 아무도 없다. 지방 촌놈들은 멋대로 해도 된다는 건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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