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41)
<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41)
  • 경남일보
  • 승인 2013.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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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어 이런 소리까지 듣고도 고작 고함 몇 번 치고는 참아야 하는 자신도 불쌍하기는 마찬가지다 싶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낡은 것들에게 배운 것이다 싶어 씁쓸했다.

“차라리 청계천의 꿈을 찾아내. 아니면 영원히 미개인 취급 받을 거야. 약탈하려고 잔대가리 굴리지 말고, 꿈을 찾아내 두고두고 자랑스러울 축제를 창조하라고. VIP가 바뀌면 조상들이 약탈한 부끄러운 축제가 즐거울 수 없는 건 뻔하잖아. 약탈한 축제를 배척하는 후손들 욕하며 젊은이들 망치는 부끄러운 짓은 하지 말아야지. 힘없는 사람들 것 약탈할 게 아니고, 후손들이 자랑스러워 할 꿈을 찾아내려고 해야지. 뭔 짓이야, 이게.”

청계천이고, 축제고, 후손이 어떻고, 지랄! 지금 내 코가 석자인데, 창조니 지랄 다 개나발이다 싶은 금수는 민지와의 술자리에서 수없이 들었던 멍청하기 그지없는 준호 이야기를 듣고 욕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민지 말대로구나. 아직도 꿈속을 해매고 있으니. 쯧쯧~”

준호는 출세하겠다며 가는 민지에게 ‘네 꿈이 아니잖아’라고 했던 게 기억났다.

“너희들만의 꿈을 찾아내. 그게 불멸의 축제야.”

“애도 아니고, 열심히 돈 벌어야 할 젊은 놈이 헛소리하고 있으니, 참 걱정이다.”

민지와 마주하고 있다면 비록 밝히는 VIP 따라 다니면서 더러운 것만 배운 금수와 같이 일하는 민지는 알아들을 것이다 싶었다. 술자리에서 금수가 민지에게 내가 하는 말을 전해 줄 것이라고 알고 있는 준호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낡은 것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준호는 민지의 눈을 볼 때처럼 금수의 눈을 빤히 쳐다보고 말을 이었다.

“젊은 너라도 꿈을 가져 보지.”

금수의 눈빛이 흔들렸다. 준호는 경련을 일으킨 금수의 손을 잡았다.

“우린 아직 젊으니까 꿈이라도 꿀 수 있잖아.”

순간 금수의 손이 준호의 손을 꽉 잡았다. 하지만 한 순간 꼭 잡았던 금수 손에서 서서히 힘이 빠지고 살며시 놓았다. 유등을 가득 실은 수 십대의 대형 트럭을 힐끔 쳐다본 금수가 메인 목을 튀려고 헛기침을 했다. 보고 싶은 민지를 잠시 생각하던 준호는 힘없이 풀어지는 금수의 손을 다시 꽉 움켜쥐었다.

“나이 들면 꿈도 꾸지 못 한다잖아. 머지않아 낡게 되면 욕먹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꿈을 꿔보자. 지랄, 아무리 꿈과 사랑이 사라진 세상이라고 해도 최소한 영혼까지 팔아먹고 살았다는 말은 듣지 않아야지.”

눈시울이 약간 붉어진 금수는 꽉 잡고 있는 준호의 손에서 서서히 자신의 손을 빼면서 잠시 하늘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민지에게 전할 말 있어?”

준호는 텅 빈 창고와 유등을 가득 실은 트럭들을 힐끔 쳐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잡았던 손을 빼간 금수를 흘겨보던 준호는 지나가는 말처럼 대답했다.

“세 사람이… 젊은 사람들끼리 소주 한 잔 하자.”

준호는 북받쳐 오르는 설움을 참으려고 입술을 깨물고 트럭에 실려 가는 유등을 쳐다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낡은 비닐하우스에는 준호가 만들고 있는 미완성 봉황 유등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래, 해보자. 누가 이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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