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42)
<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42)
  • 경남일보
  • 승인 2013.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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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남은 준호는 이를 악물고 끝까지 해보자고 다짐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생각에 유등축제 중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계적인 축제로 만들기 위해서는 시시한 잡것들과 싸울 시간도 없다고 생각했다. 인공지능 칩 박스를 봉황 유등 가슴에 조립하고 머리와 날개를 조종하는 동력 전달 장치와 연결했다. 늦은 시간까지 작업해 완성한 봉황 유등의 오색 깃을 어루만지며 민지와 같이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상상을 하며 하루의 피로를 달랬다.

한편, 피땀 흘려 키운 자식 같은 유등이 서울로 실려 가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는 정 사장의 눈동자에 불꽃이 일었다. 평생을 연구하고, 전 재산을 투자해 키운 자식 같은 유등을 성공시켜 주겠다는 대기업 S엔터테인먼트 박 회장이 쥐어준 푼돈에 눈이 멀어 자식들을 팔았던 건 일생일대의 과오였다.

피땀 흘려 잘 키운 자식을 팔아먹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정 사장은 누구에게도 자식이 팔려가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고, 돈에 팔려가는 자식을 차마 쳐다볼 수 없어 회사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자식들을 두고 멀리 갈 수 없어 회사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내 자식들 내려 놔.”

정 사장은 고함을 치며 유등을 싣고 가는 트럭 행렬 앞을 가로막고 섰다. 앞서 달리던 검정색 벤츠가 멈추었다. 벤츠에서 내린 금수는 경비업체 직원들과 함께 정 사장 앞에 섰다.

“자식?”

누구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던 금수가 히죽거렸다.

“피땀 흘려 키운 내 자식들….”

트럭에 실려 꽁꽁 묶인 유등을 바라보는 정 사장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솟구쳤다.

유등 제작에 평생을 바친 정 사장의 자식 같은 유등에는 정 사장의 피가 흐르고, 땀이 맺혀 있었다.

“납치범으로 몰려고 자작극 부리는 건 아니겠지.”

트럭에 실린 유등을 보고 흐느껴 우는 정 사장을 본 금수는 그제야 자식이 누군지 알았다.

“자식을 팔아먹은 애비 꼴 좋네.”

비아냥거린 금수는 정 사장을 밀쳤다. 바닥에 내팽개쳐졌던 정 사장이 벌떡 일어나 금수에게 덤벼들었다. 경비업체 직원들이 정 사장 팔을 양쪽에서 잡고 옆으로 끌어냈다. 정 사장은 자신을 길옆에 내동댕이치고 가는 경비업체 직원들 속을 뚫고 달려가 트럭 위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못가!”

담배를 꼬나문 금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발광하는 정 사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자식 좋아하시네. 큰돈 벌었다고 춤출 때는 언제고, 쯧쯧~”

경비업체 직원들은 트럭위로 올라가는 정 사장의 바짓가랑이를 잡아 당겨 사정없이 끌어 내렸다. 하지만 정 사장은 다시 트럭으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시간 없어. 빨리 치우고 가자.”

금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경비업체 직원들은 시위진압용 타이저 건을 꺼내 정 사장을 향해 쏘았다. 총에 맞은 정 사장이 길바닥에 폭삭 꼬꾸라졌다. 준호가 날아다니는 봉황 유등을 완성할 때까지 정 사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늦은 시간까지 유등 만들기에 지친 몸을 끌고 걷던 준호는 낯익은 청색 작업복을 보고 달려갔다.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정 사장을 일으켜 세웠다. 정 사장은 힘없는 목소리로 계속 중얼거리기만 했다.

“내 자식들 잘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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