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47)
<박응상 연재소설> 유등의 꿈(47)
  • 경남일보
  • 승인 2013.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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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예술제는…”

잠시 머뭇거리던 동창 총무가 말끝을 흐렸다.

“특별한 게 없잖아. 전국 어디를 가나 비슷한 축제를 볼 수 있잖아. 옛날에야 개천예술제하면 최고였지만 이제 걸리는 게 축제야.”

“올해 유등축제는 끝내 준다고…”

열심히 준비한 준호는 막연한 믿음이 무너지는 듯 했다.

“이제 서울에서도 볼 수 있는데 뭐 하러 내려가.”

준호는 철없던 사춘기 시절 창작등 터널 아래서 각자의 꿈을 유등으로 만들어 걸고, 유등 불빛 아래서 매년 꿈을 이야기했던 친구들의 환한 웃음을 떠올렸다.

“유등의 꿈은 어쩌고?”

“뭐, 꿈? 무슨 소리하는 기고? 아, 그거. 개천예술제때 모이기만 하면 술 취해서 하는 헛소리 말이지.”

매년 가을에 고향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어떻게 사는지 안부를 묻고, 철없던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도 학창시절의 꿈 이야기를 했던 것은 아무리 술 취했지만 헛소리는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헛소리? 인간들 99%는 꿈이 없다는 게 누구 말마따나 불편한 진실이야.”

준호의 귓전에 아버지의 조언이 맴돌았다. 출세하려고 서울 간 민지도 꿈을 잃어 버리고 사는 건 아니겠지 하고 믿어 보았다.

“친구야, 그동안 고향일이라 말을 아꼈는데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냐. 애향심에 기대서는 오래가지 못해. 등축제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걸, 세상 공부 겸 니가 올라와.”

특별한 게 없는 유등축제를 보러 갈 이유가 없다는 말에 달리 변명할 거리가 없었다. 그래도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아무리 바빠도 와야 한다는 낡은 생각으로 기대를 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향수에 젖을 수 있어 좋아. 너 서울 오면 칙사 대접할 테니 니가 와라.”

혼자 고향에 남아 있는 준호를 친구들이 서울로 초대했다.

“아무도 안 와?”

“천리 길이지만 이번에는 니가 올라와. 넌 혼자니까 움직이기도 편하잖아. 번거롭게 여럿 움직이느니 니가 오는 게 좋겠다. 사람이 나면 서울로 보내란 말이 괜한 말은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거야. 꼭 와야 돼.”

준호는 왠지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일었다.

“설마 민지까지…?”

진주남강유등축제가 끝난 다음 달에 시작하는 서울 등 축제를 독점하는 축제 분야 1군 업체이고 대기업 계열사이며 VIP 형님의 동생이 경영하는 S엔터테이먼트에 근무하는 민지는 등축제 준비를 총괄하고 있었다.

특별한 연고도 없는 진주에서 대학시절을 보낸 민지는 유등축제의 본 고장인 진주의 창작등 연구소에서 배우며 유등 예술가의 꿈을 키워 서울 가서 성공했다. 준호는 민지 유등을 만들어 불을 밝힌 첫날 사진을 찍어 보내고, 기네스북에 도전하는 아름다운 꿈을 찍어 보내는 정도로 마음을 전했다. 취직했다는 등 딱히 확연하게 변한 건 없고, 자랑거리가 생긴 것도 아니고, 로또에 당첨된 것도 아니고, 내세울게 없어 전화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날아다니는 봉황과 청룡 유등 연습까지 마친 준호는 민지에게 보여줄 것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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