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관한 신화와 황혼이혼
가족에 관한 신화와 황혼이혼
  • 경남일보
  • 승인 2013.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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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숙 (경상대 사회학과 교수)
인간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접하는 곳이 가족이다. 형태나 성격은 다르더라도 가족은 한 개인의 일생에 걸쳐 가장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장소이다. 가족에 관한 신화 중의 하나는 가족이 삭막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안식을 얻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가족은 서로를 보호해 주고 애정으로 감싸주는 안식처인가. 만약 가족이 안식처라면 이는 누구를 위한 안식처인가.

여성에게 자녀양육의 책임은 당연한 것으로 기대되고 있고, 모성은 신비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여성의 의무로 규정돼 왔다. 전형적 가족이데올로기에 의해 여성은 주부로서, 어머니로서 출산, 양육 및 가족의 의식주를 위한 가사노동을 무보수로 담당해 왔다. ‘어머니는 최적의 양육자’라는 통념은 여성들에게 양육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을 지도록 했으며, ‘희생적인 어머니상’은 미화되고 희생적이지 않은 여성은 이기적인 여성으로 매도됐다. 여성에게 가족은 안식처라기보다는 끊임없이 가족원들을 보살피고 의식주 등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고 가족구성원을 만족시켜야 하는 장소인 것인데, 실제로 가사노동과 자녀양육 등 가정내에서 이뤄지는 구체적 활동을 살펴봐도 여성에게 가정은 상당량의 일을 해야 하는 장소이다.

그러므로 여성에게 가족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하나는 정서적·물질적 안정과 행복을 경험하는 친밀한 가족이고, 다른 하나는 아내와 어머니라는 역할로 인해 가족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그들의 욕망과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욕망과 필요를 잃어버리거나 억압하는 굴레로서의 가족이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나고 자아존중과 개성 추구가 강조되는 현대사회에서도 근대 초기에 틀 지워진 ‘남성=생계책임자, 여성=전업주부, 모성역할 담당’이라는 성별분업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가족구조와 문화가 쉽게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월 20일 대법원이 발간한 ‘2013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11만 4316건의 이혼사건 중 결혼기간이 20년 이상인 부부가 3만 234건으로 전체의 26.4%를 차지했다. 2009년 22.8%였던 황혼이혼의 비중이 계속 늘면서 신혼이혼을 앞선 것이다. 황혼이혼 증가 원인과 해석에는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고 기대수명이 길어지면서 이제는 여성들이 과거처럼 가족을 위해 자기 자신을 모두 희생하지는 않으려 한다는 것이며, 여성에게 가족이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니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자식들을 다 키워 놓고 이제는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황혼이혼은 남편의 정년이라는 생활상의 변화를 계기로 누적됐던 아내의 불만이 표면화되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내일 죽더라도 오늘 이혼하고 싶다’의 저자 김영희는 더 이상 불행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절박한 심정과 황혼이혼이 하나의 선택임을 보여주고 있다. 황혼이혼의 증가는 과거 희생적으로 살던 한국 여성들이 이기적으로 되었다거나 가족위기의 징후라기보다는 여성들의 교육수준 향상, 경제활동 참여, 1991년 민법 개정과 함께 도입된 재산분할 제도, 가치관의 변화 등이 가져온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결혼유지를 위해 남편과 아내의 민주적이며 동반자적인 가족관계가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가족의 형태나 생활양식, 가족을 둘러싼 가치관 등은 사회마다 나라마다 차이점이 있으며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핵가족에 기반을 둔 전형적인 가족개념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으며 그 대신 미혼모, 한부모가정, 이혼가정, 독신 등 새로운 가족 형태들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의 상황은 단순히 가족위기나 가족해체라기보다는 여성의 지위 향상과 다양한 가족이 형성돼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봐야 할 것이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는 성별 노동분업을 수행하는 현대 핵가족을 ‘정상 가족’이라고 규정하는 가족이데올로기로 인해 이 틀에 맞지 않는 가족들을 ‘결손 가족’이라든지 ‘일탈된 가족’이라는 낙인을 붙여 부담을 주어 왔다. 전형적인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한국가족의 변모과정 속에서 가족의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이혜숙 (경상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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