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의 유골, 유럽철학을 헤집다
데카르트의 유골, 유럽철학을 헤집다
  • 연합뉴스
  • 승인 2013.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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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유골의 여정 따라가는 러셀 쇼토 신간
17세기 데카르트의 철학은 불온했다. 교회와 왕실의 견고한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개인의 이성으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보수적인 대학 관료는 아예 데카르트의 철학을 가르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그의 철학은 사후에 더욱 빛났다. 이후 어떤 철학자도 데카르트가 짠 사고 틀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유럽 철학이 플라톤에 대한 각주라면, 근대 유럽 철학은 데카르트에 대한 각주’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유럽 지성사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탓인지 유골도 심한 고초를 겪었다. 무려 세 차례나 관 뚜껑이 다시 열렸고 심지어 머리뼈가 사라지기도 했다.

데카르트는 1650년 스톡홀름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쳤다. 16년 뒤 스웨덴 주재 프랑스 대사가 유골을 몰래 파내 프랑스로 옮겼다. 데카르트주의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으려는 마음에서 벌인 일이다.

유골이 안치된 파리 생트 주네비에브 성당이 당시 혁명정부에 몰수될 위기에 처하면서 유골은 프랑스유물박물관으로 또 옮겨진다. 유골은 이후 프랑스 혁명에 공헌한 위인들을 팡테옹(국립묘지)에 모셔야 한다는 논리에 따라 생제르맹 데 프레 성당으로 다시 이송된다.

그런데 세 번째 이송 때 사람들은 데카르트의 머리뼈가 사라진 사실을 발견하고 경악한다. 손가락뼈 등도 슬금슬금 사라진 상태였다.

원소주기율표를 개발한 스웨덴 화학자 베르셀리우스가 우연히 스웨덴에서 데카르트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을 찾아낸다. 유골은 온통 낙서가 된 기괴한 모습이었다.

이 유골을 분석하기 위해 미터법을 창조한 들랑브르, 비교해부학을 탄생시킨 퀴비에, 진화론을 주창한 라마르크, 현대 화학 용어를 정립한 베르톨레 등 당대 최고의 과학자가 모인다. 와중에 유골을 훔친 자에 관한 실마리가 잡히면서 미스터리가 하나씩 풀리기 시작한다.

데카르트의 유골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여정에 주목한 이는 암스테르담의 존 애덤스 연구원장인 미국의 역사가 러셀 쇼토다.

그는 프랑스국립도서관을 비롯해 데카르트의 생가, 스톡홀름 등을 직접 찾았다. 유골이 서유럽을 횡단했던 길도 따라가며 분석했다.

유골을 뒤쫓는 길은 곧 서양근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되짚어가는 일이었다. 책에서는 계몽주의자들의 비밀모임, 프랑스 혁명 절정기의 파리, 프랑스 아카데미데시앙스의 학회실, 초창기 인류학학회 등의 장면이 차례로 소개된다.

결국 근대 지식사의 여정을 훑는 이 책은 추리소설 같은 지식 계보학 서적인 셈이다. 데카르트 유골을 둘러싸고 벌인 지성의 각축전을 살펴보면서 근대 철학과 과학의 지형도를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다.

옥당. 392쪽. 2만2000원.

연합뉴스

데카르트의 사라진 유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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