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꽃처럼 순수하고 아름답게
가을꽃처럼 순수하고 아름답게
  • 경남일보
  • 승인 2013.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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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가을에는 누구나 시인이며 예술가가 된다. 가슴으로 가을을 느끼는 이라면 그가 곧 시인이며 예술가가 아닐까. 가을을 스치는 옷소매의 만남, 무심결에 마주치는 눈빛, 이러한 만남 모두가 삼천겁의 인연일진대, 인간사 모든 일이란 그것이 아무리 심각한 결과를 가져왔을지라도 그 시작은 결국 만남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지난 봄날 초록으로 물든 초목의 만남은 얼마나 아름답고 황홀했던가. 그 초록은 서로가 다투듯 무럭무럭 피어나 여름을 뒤덮을 때의 성숙함, 참으로 싱그러운 신록의 계절이었다.

가을에는 우리들 자신도 성숙되어 가겠지만 세상과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란 진실로 중요하지 않다고 지금껏 소홀히 여겨온 바로 그것들인 것을 깨우치게 될 듯. 한 번의 미소가 천만금보다 소중했고, 한마디의 실수가 성현들의 금언절구보다 더 값진 것이었음을 비로소 알아질 듯. 영원한 사랑보다 지금 당장의 정다운 말 한마디를 듣고 싶은 것, 사랑은 바로 그런 것이며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나눔이라는 것을 어리석게도 이제야 알아질 듯. 그래서 저 먼 꿈으로 가는 길은 아무것도 아닌 듯한 하루하루의 생활로 이루어지고, 그 생활이야말로 때로는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아이러니인가?

이 가을 들길 저만치에서 피어있는 가을꽃 몇 송이를 건너 받는 행복과 절대로 바꾸려 하지 않는 무욕의 욕심을 이제 이해하도록 하자. 사랑이 아무리 위대하다 해도, 그 실천은 지극히 작은 것일 때 더욱 값지다는 모순을 알 만하지 않는가? 그처럼 자연 속에 서면 사람 또한 얼마나 작아지는가. 그러나 자연 속에 설 때만이 사람은 우주보다 큰 가슴을 가질 수 있겠지만, 가을꽃이 떠올려주는 지난 세월들. 지나가버린 세월에 스쳐진 인연들. 그 희미한 기억들이 흙냄새 풍겨오는 외로운 들길에 웃음 잃고 피어나는 구절초가 되어 가을 하늘 휘저어 바람의 향기로 다가온다.

우리 모두 회복 불가능한 마음속 낙원의 세상을 이 가을에 되살려 음미하는 행복에 젖고 싶은 감상에도 목마르자. 감상이라는 물기를 상실해버려서 아무 생명도 자라지 못하는 사막 같은 흙먼지 날리는 가슴으로 자신과 주위에 너무나 냉엄하고 무감각하게 살아오진 않았는가? 이제는 좀 살아있는 사람답게 인정과 사랑의 물기로, 별것 아닌 일에 즐거워하고, 별것 아닌 슬픔에 가슴 아파하며, 남의 작은 아픔에도 깊이 공감하며, 가족이 되고 이웃이 되어 가을꽃처럼 순수하고 아름답게 살도록 하자.

진실로 순수한 아름다움은 현란하고 울긋불긋한 꽃이 아니라, 한 많은 사연을 담고 일편담심 곧은 절개로 눈물 속에 피어난 천상의 꽃 구절초라는 생각에 눈떠질 때쯤 가을 하늘은 더욱 높기만 하고, 눈길은 시리고 푸르고 멀어져만 간다. 어느 한적한 가을 들녘 들국화 속으로 찾아들 때, 소유보다는 발견의 기쁨, 얻기보다는 버리는 슬기를 얻자. 서리 찬 들녘자락을 별빛 내려 쓸고 갈 때 하얀 소복단장한 여인네의 모습으로 천상의 꽃으로 피어나는 향기로운 꽃 구절초를. 그 진한 향기 가을바람과 함께 천상의 음악으로 승화시켜 우리의 늙음도 구절초처럼 순수해지길 바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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