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2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2회)
  • 경남일보
  • 승인 2013.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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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1.연에 앉은 새
사람들은 그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사람들 눈길을 잡아끈 까닭은 또 있었다. 지금은 연을 날리는 계절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연날리기는 정초부터 정월 대보름 사이에 성행했고, 특히 대보름날에는 연줄을 끊어 연을 날려 보냄으로써 액막이를 하면서 연놀이를 끝내었다. 그날 이후에도 연을 날리면 ‘고리백정’이라고 욕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어느 곳에서 띄우는지는 모르지만, 어떤 사람이 8월에 연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8월의 연날리기라니.

어쨌든 그것은 수십 년 동안 연을 보아왔던 사람 눈에도 생전 처음 보는 장면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더욱 희한하달까 불가사의한 일은, 그 연이 새를 태우고도 흔들리거나 땅으로 처박히지 않고 아주 잔잔하고 여유로이 떠 있다는 사실이었다.

‘역시 내가 내다보고 있는 그대로구나! 게다가 방패연이라니? 무릇 방패라는 것은…….’

탁발승은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전쟁 때 적의 칼이나 창, 화살 따위를 막는 무기가 바로 방패가 아닌가. 그 방패를 본떠 만든 연, 방패연.

‘만약 내가 기대하는 것으로도 그자들을 막지 못한다면 어찌할꼬?’

남들은 무슨 뜻인지 모를 그런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걱정과 우려에 휩싸이는 탁발승 눈에는, 지구를 절반으로 나눈 모양의 하늘이 지상의 사람들을 똑바로 겨냥하고 있는 활시위처럼 느껴져, 학질 앓는 사람같이 부르르 온몸을 떨어야 했다. 그때 탁발승 가까이 서 있던 어떤 노파 하나가 문득 입을 열어 이렇게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서울 선비 연을 띄워 곤륜산에 걸렸네. 아홉 방의 세녀(洗女)들아, 연줄 거는 구경가세.”

그것은 연날리기를 노래한 그 고을 민요였다. 그러자 막 초로에 접어든 한 사내는 장단 맞추듯 바람에 흔들리는 논의 허수아비같이 몸을 우쭐거렸고, 크고작은 계집아이들은 따라 부르기도 했다. 탁발승은 어쩐지 코끝이 찡했다. 중국의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낙원들 중에서도 가장 영험이 강한 신선들의 땅이라 일컬어지는 곤륜산. 옥산(玉山)이라고도 하는 그곳에 사는 선인을 서왕모(西王母)라고 한다던가. 그런 선인에 견주어보면 우리 중생들은 얼마나 초라하고 가련한 존재들일까?

하지만 머리칼이 허옇게 세다 못해 푸른빛마저 감도는 그 노파는, 그동안 외로웠던지 다른 사람들이 같이 놀아주자 무척이나 신이 나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이빨도 거의 남아 있지 못해 동굴 속 같은 시커먼 입을 열어, 아까부터 연에만 눈을 주고 있는 사내아이들 관심도 끌기 위한 듯 이렇게 물었다.

“배꼽을 떼내어 이마에 딱 붙이고, 뼈대만 남은 것이 종이옷을 입고 공중에서 춤추는 게 뭐냐?”

그러자 사내아이들이 입을 모아,

“연요, 연! 저기 있네요?”

“할머니는 눈이 어두워 잘 안 보이세요?”

아이들이 싱겁게 금방 답을 알아맞히자 노파는 그만 시무룩해졌다. 탁발승 눈에 비친 그녀의 얼굴 모양이, 머리 부분은 화살촉과 같고 꼬리는 깃발과 흡사한 가오리연을 방불케 하였다. 조선의 대표적인 연이 방패연과 가오리연이었다.

이윽고 연에 올라앉아 있던 새가 훌쩍 날아오르더니 산쪽으로 사라졌다. 연 주인도 얼레질을 하여 연실을 감아들이는지 연이 그집에서 멀어지고 있다. 연과 새가 사라진 하늘은 드없이 넓고 푸르렀다. 그 수수께끼와도 같은 일이 있게 한, 연을 날리던 그는 어디 사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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