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의 열풍이...
카지노의 열풍이...
  • 경남일보
  • 승인 2013.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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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수 (미래촌 아이동장)
지난 10월 강원도 정선의 민둥산 억새꽃 축제에를 다녀왔다. 잔뜩 기대하고 간 것에 비하면 초라하다는 생각이다. 어차피 아무것도 없는 대머리 산이 민둥산(보통명사)이라면 기대에 못미치는 것 쯤이야 그냥 넘길 수 있다. 다만 지역축제라고 내걸었으면 그에 걸맞게 정성을 들였어야 하는데 겨우 산에 내건 표딱지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민둥산 쓰레기’이니 애교라고 하기에는 엄포용으로 들려 언짢다.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축제마당의 안타까운 호소가 오히려 조롱거리로 들리는 것은 억새밭 가꾼 손길이 너무 허술해 보여서 일게다.

민둥산에 오르려면 민둥산역에서 내린다. 옛날에는 증산역이었는데 근래에 이름을 바꾸었단다. 화전민의 삶터여서 산자락을 뭉개 지금처럼 민둥으로 되어 별명이 민둥산이었을 터인데 후에 한자로 표기하면서 증산이 되었다가 다시 본 이름을 되찾은 것은 아닐까.

역을 벗어나자 곧바로 보이는 게 모텔에 호텔에 민박에 팬션에 숙박시설로 가득하다. 민둥산 갈대축제가 유명해서 관광객이 많아 그러한가,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숙소를 안내하는 여주인이 일깨워 준다. “바로 다음 역이 사북역이고요. 거기 카지노가 있어요.” 카지노와 이 숙소들이 왜 이어지는 것일까? 사북역을 가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분명 라스베이거스처럼 흥청거리는 분위기일거라 짐작이 간다. 민둥산역이 있는 이곳 ‘무릉리’(마을이름이 심상치 않다)가 비교적 조용하고 값 싸고 숙박하기에 제격일 터이다.

아침 일찍 산책길에 나서 우연히 동네 끝자락 토끼굴을 발견한다. ‘원시림이 우거져 있고 연분홍 철쭉이 아름다운 두위봉 마을’이라는 안내판에 궁금증이 더하다. ‘자못골’이라 이름하는 이곳 아름다운 경관을 다 헤집어 원시림과 철쭉동산은 다 뭉개져 버리는 느낌이다. 사북 카지노의 여파가 여기 정선 골짜기를 강타하고 있는 씁쓸한 현장을 훔쳐 본다.

정선 5일장을 다녀서 정선아리랑 창극을 보고 민속촌을 곁들여 본다. 지금까지는 모두 공짜여서 무언가 얹어주고 싶은 마음들을 조금씩은 남기면서 정선을 떠난다. 지난 5월부터는 공짜로 보는 대신 ‘정선아리랑상품권’을 사야 한다. 지역화폐라며 5천원, 3천원 상품권을 인심쓰는 척 제법 심통부리며 강매한다. 보는 건 무료인데 그만큼 정선에다 돈 좀 뿌리고 가 달라는 주문이다. 차라리 ‘입장상품권’이라 하여 공지해 놓았으면 좋았을 것을. 마음 먹고 찾아온 손님에게 강매하는 꼴이어서 인심 좋은 정선의 이미지가 싹 가신다.

‘카지노’의 열풍이 이곳 정선 전체를 뒤덮어 ‘돈 독에 오른 시골’이 되어가는 것 같아 마음이 불안하다. 저수지에 던진 돌멩이 하나가 연못 전체에 파문을 일으킨다더니, 아우라지 정선이 카지노 사북으로 변모해 가는 모습에 크게 당황한다. 아리랑의 고장 정선에서 자연과 고향의 그리움을 찾으려는 것이 헛된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 아우라지 정선만이라도 고히 남겨 두시기를 마음속으로 단단히 부탁드리며 혼탁한 도시로 돌아온다.

김만수 (미래촌 아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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