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8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8회)
  • 경남일보
  • 승인 2013.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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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2. 두 아이
그 시각, 여기는 충청도 목천현 백전촌.

잣밭마을에 팔월 한가위를 하루 넘긴 달이 뜨기 시작한다. 보름달보다 열엿샛날 달이 더 크고 둥글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안다.

늘 발돋움을 하고 있는 거인 같은 잣나무 그림자를 밟고 선 두 사람이 있다. 체구가 우람한 사내와 만삭의 여인. 경상도 땅의 그 부부가 바람을 타고 구름 속을 날아 그곳 충청도 땅까지 다다른 것인가? 남편들이 하나같이 건장하고 부인들 배도 똑같이 불러 있다. 하지만 행색이며 말씨 그리고 풍기는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지금 부인께서 달을 안고 계시는 것 같구려.”

남편 눈에는 달도 부끄러워할 꽃 같은 부인이었다.

“부끄러운 말씀이오나…….”

여인은 이지러졌다가 찬 하늘의 달처럼 아이 낳을 달이 찬 자신의 배를 매만지며,

“해를 안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아니 되실는지요.”

대화가 사뭇 선문답을 연상케 했다. 사내는 정색한 얼굴로 물었다.

“해? 해라고 하시었소?”

초사흘 달은 잰 며느리가 본다고, 아주 미세한 것까지도 잘 살피는 슬기롭고 민첩한 아내의 말이기에 사내는 조금 긴장되기도 했다.

“달이 아니라 해…….”

사내는 두꺼운 가슴을 쑥 내밀고 숨을 들이켠 후 말했다.

“그러니까 부인 말씀은, 딸보다 아들이기를 더 바라신다는……?”

딸만 내리 일곱을 낳아 가계를 전승할 수 있는 아들이 없자 후실을 들이고 첩을 얻더니, 끝내 조강지처를 내쫓아버렸다는 이웃마을 홍첨지에 대한 소문이 사내 머리에 떠올랐다.

“이몸이야 부인께서 저 잣나무같이 늠름한 사내아이를 낳아주신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소만, 허허.”

회갈색 나무껍질이 벗겨진 자리에는 적갈색 속몸이 남는 잣나무. 대단히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재질도 가볍고 향기가 좋은 그 나무 목재는 고급 건축재로 제격이었다.

“당신께옵서는 늘 잣나무는 암꽃보다 수꽃이 더 아름답다고 하십니다만…….”

여인은 무슨 말을 해도 투정부리는 것같이 보이지는 않을 정숙함을 간직한 모습이었다. 그들 저택의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짓는, 중문을 중심으로 둘러친 ‘내외담’ 근처에 자라는 껍질이 깨끗한 배롱나무를 특히 좋아하는 그녀였다. 떠나간 벗을 그리워하는 나무이기도 하다는 그 나무가 좋다는 아내는 누구를 그리워하는 것일까 궁금해지기도 하는 사내였다.

“공자의 묘지 주변에는 오래된 측백나무가 가득 심어져 있다고 들었소. 내 무덤가에는 잣나무를 가득 심어달라고 유언을 남기고 싶은데…….”

어느 날인가 사내가 그런 말을 했을 때, 아내는 당장 눈에 눈물이 글썽해지면서 말했다.

“제발 앞으로는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사별이라는 것, 생각만 해도 미칠 것 같아요.”

그 기억을 떠올리며 남편은 말해주었다.

“나는 가지 위쪽에 피는 암꽃보다 가지 밑에 피는 수꽃이 더 좋다고 한 것뿐인데…….”

그 말에 아내는 퍼뜩 깨달았다. 아, 저이는 아마도 겸손함에 대해 말씀하고자 했던 모양이구나! 하고.

“저는 붉은색 수꽃보다 자주색 암꽃이 더 좋기는 합니다만…….”

그러는 여인의 얼굴은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배꽃같이 새하얘 보였다. 속살은 더 희다는 것을 알면 무색해진 달은 그 빛을 거둬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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