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은 새로운 만남과 탄생
연말은 새로운 만남과 탄생
  • 경남일보
  • 승인 2013.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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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누구나 연말에 와서야 반성하고 깨닫는 건 아닐까. 일 년 내내 그대로이다가 연말에 와서야 자신을 돌아보고 잘못 살아온 것을 깊이 뉘우치게 되는 것. 따라서 일 년 중 우리에게서 견디기 힘든 때도 바로 연말인 것 같다. 행복한 가슴을 위해서가 아니라 때로는 피멍 드는 먹장 가슴을 위해서 수시로 시간 낭비를 해온 것 같고, 많은 실수와 잘못을 저질러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말이면 고개는 깊이 숙여지고 두 눈은 무겁게 감겨지면서 잘 못 살아 왔다는 자신의 고백에 문득 놀라기도 할 것이다.

사람도 어쩌지 못하는 세월의 한 마디가 마감되는 초조감, 허무감이 한꺼번에 가슴 전체로 느껴지는 연말이면 저절로 자신을 돌아다볼 수밖에 없는 살아온 지난 한 해가 아니던가. 왠지 잘 살아온 것보다는 잘 못 살아온 것이 많았음을 알게 될 뿐. 그래서 사람들은 일 년 내내 조금씩 깨닫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깨닫는 것 같다. 어쩌면 일 년 내내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금년도 몇 날밖에 남지 않은 연말에 와서야 한꺼번에 성숙해진다는 점이다. 마치 아픔과 괴로움과 불행을 견디어내고 난 직후에 달관과 해탈에 이르듯이, 강물이 끝나는 그 자리가 거대한 바다가 되듯이.

지나온 한 해를 값 매기고 평가할 때 마음이 성숙되고 나름대로의 경지에 이르는 인생의 눈이 떠지는 것이라면, 다시는 얻지 못할 상실, 잘못이나 실수, 수치나 굴욕감에 대한 깨우침의 의미나 삶의 진실도 달관이나 해탈의 의미로서 생각하면 우리에겐 반드시 필요할 수밖에 없으리라. 해마다 마지막을 경험한다는 것은 우리의 정신적 성숙을 위해서 진정 필요하거늘. 누구나 연말에 와서야 세월의 깊이를 느끼며 깨달음에 이르도록 일 년을 열두 달로 쪼개 놓고 마지막과 시작의 단위를 만들지 않았을까? 무한한 세월을 토막 쳐서 매듭 묶어 마지막을 만든 것이야말로 얼마나 지혜로운가.

사람이 늙지 않으면 어찌 지혜가 축적되고 더 나은 곳으로 발전해 가랴. 모든 늙음과 마지막과 이별과 죽음까지도, 새로운 탄생과 새로운 만남과 새 기회를 위해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 인생을 느낄 만큼 많은 깨달음에 이르도록 괴로워하면서, 그러고 나면 순수와 진실과 정직의 새 희망과 새 꿈의 새해와 만나지리라. 새로운 만남을 위해서는 이별이 있어야 하고, 멋진 만남을 위해서는 더 괴로운 이별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터득하면서, 어떤 처지의 그 누구라도 절망은 하지 말자. 오직 희망과 행운의 만남을 위해서는 거쳐야 할 과정이 있다는 것임을 믿어 의심치 말자.

마지막에서 인생을 느끼는 많은 부정적인 경험 끝에 시작은 뒤따르는 것. 끝이 있으면 반드시 시작이 따르게 마련이고, 이별이 있어야 새로운 만남이 오는 것처럼 마지막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희생의 몫이다. 따라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은 있을 수 없다는 것. 비록 죽음일지라도 이 세상의 마지막은 다른 세상에서의 탄생이라 믿자. 그 어떤 수치의 마지막도, 그 어떤 쓰린 이별도 멋진 시작과 기막힌 만남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자. 그러므로 금년의 마지막과도 아프게 이별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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