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성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반값 등록금 공약이 슬그머니 들어간 이야기부터 철도 민영화 논란으로 인한 사회 분위기까지 전했다. 진정으로 이 사회가 ‘안녕’해지길 바란다며 글을 쓴 이유를 밝혔다. 학생은 대자보를 쓰기 위해 현 정부에 대한 많은 기사와 글을 읽었다고 한다. 본인 스스로 많은 생각을 했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대자보 게시 이후의 걱정도 엿보인다. ‘솔직히 무섭다’, ‘몇 번이나 고민했다’, ‘주제 넘은 행동으로 생각할까’라는 표현이 나온다. 고등학생이라는 신분, 그리고 자신의 학교에서 누구도 하지 않았던 시도를 하는 것이 얼마나 불안했을까. 학생은 끝으로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약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라는 ‘마틴 루터 킹’의 말을 인용했다.
이 대자보 주인공에게 박수를 보낸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용기를 냈다. 하지만 대자보는 학교측에 의해 곧바로 뜯겨졌다. 불법 게시물이라는 이유였다. 우리는 내용에 따라 관용과 불법을 제멋대로 들이대는 사례를 자주 봐왔다. 정부를 찬양하는 내용이었다면 그렇게 뜯겨져 나갔을까. 학교의 철거는 학생단속 제대로 못했다는 질책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경남교육청은 “학생은 정치적·종교적 중립의무가 있다”며 철거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국가보훈처는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2만명이 넘는 전국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종북세력’이라는 내용을 강연했다. 정치 편향적인 강연에 대해 교육청이 중단을 요구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이런 교육청이 대자보 하나에 호들갑 뜨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세상은 변하는데 교육계는 아직도 교과서로만 세상을 보도록 강요하고 있다. 학생도 사회현상에 대해 주장을 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 그것이 민주시민 육성이라는 교육명제 아니던가. 또 논술을 가르치는 이유가 이 때문 아니던가.
진주여고 학생의 대자보 맨 아래에는 ‘12월 22일 스스로 수거하겠으니 잘못된 점이 있다면 대자보를 훼손하지 마시고 반박 대자보를 게시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학교는 사진을 찍으려던 학생들을 제지하고 대자보를 철거했다고 한다.
고3 학생! 대자보 사건 이후 안녕하신지 궁금하다. 부끄러운 어른들의 행동에 안녕치 못한 어른들도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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