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지 교수의 의학이야기
조유지 교수의 의학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13.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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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고 싶은 4관왕
지난 가을 전국체전에서 박태환 선수가 수영 종목 4관왕을 차지했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일등을 한번 하기도 힘들 텐데 네 차례나 금메달을 땄다니-그리고 모두 알다시피,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땄던 선수가 아닌가-얼마나 뿌듯하고 기쁠까 기사를 읽으며 생각했었다.

이렇게 영광스러운 4관왕이 있는가 하면 필자 주변에는 전혀 달갑지 않은 4관왕이 있다. 바로 결핵이다. 우리나라는 2011년 기준으로 34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중 결핵 발생률(10만 명당 100명), 유병률(149명), 사망률(4.9명), 다재 내성 결핵 환자 수 1위를 달리고 있다. 1년 동안 새롭게 결핵으로 진단되는 환자의 수가 OECD 평균이 12.7명이고 2위인 포르투갈이 29명인 것과 비교하면 우리는 100명이니 1등도 그냥 1등이 아니라 압도적인 1등이다. 물론 OECD 가입되지 않은 나라 중에서도 결핵이 많이 발생하는 나라가 있으니 우리가 진정 세계 1위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소위 좀 산다 싶은 나라 중 수위를 달리고 있음은 반박의 여지가 없는 현실이다.

필자에게도 일주일에 한 명 정도는 꼬박꼬박 결핵으로 진단 받는 환자가 생긴다. 환자 혹은 가족에게 결핵임을 알려드리면 돌아오는 반응은 대개 이렇다. ‘결핵이 아직도 있나요?’ ‘결핵은 후진국 병 아닌가요?’ ‘나는 기침만 조금 나올 뿐인데 결핵이라뇨?’ 등이다. 국가는 결핵 순위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데 정작 국민은 결핵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얘기이다.

그 질문에 한가지씩 대답을 하자면 이렇다. 아직도 당연히 결핵이 있다. 우리나라가 결핵에 대한 통계를 시작한 이래로 결핵 환자는 빠르게 줄어들었고, 결핵 환자에 대한 신고를 강화한 2000년 이후 감소 속도가 둔화되었다. 이는 이전에 신고되지 않았던 결핵 환자도 샅샅이 조사하여 통계에 포함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맞다. 결핵은 후진국병이다. 결핵은 기침을 통해 나온 균이 공중에 떠다니다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 균이 포함된 공기를 들이마실 때 결핵균이 함께 폐로 들어가서 생기는 전염병이기 때문에 좁은 공간에 여러 사람이 함께 사는 환경, 영양상태, 면역이 저하된 경우, 아파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후진국일수록 증가하는 특징을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결핵 환자가 많은가? 개발 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문턱이라더니 헛된 꿈이었던 걸까? 사실 우리나라처럼 불과 50~60년 전 전쟁으로 완전히 잿더미가 된 나라를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성장시킨 나라도 드물다. 즉, 전쟁 통에 결핵에 걸렸던 혹은 걸릴 위험이 많았던 사람들이 나이 들어 죽기 전에 결핵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통계를 낼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오랜 내전으로 고통 받고 있는 아프리카 대부분 나라는 우리나라보다 결핵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네들은 아직 국민들의 위생과 건강을 위해 결핵을 조사하고 통계 낼 만한 성장이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묻혀 있을 뿐이다.

결핵 환자하면 떠오르는 모습이 있을까? 못 먹어서 눈은 퀭하고 피골이 상접한 그런 사람? 실제 필자의 외래에서 결핵으로 진단받는 사람 중 그런 모습을 한 사람은 10%도 되지 않는다. 겉모습은 결핵이 없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기침을 한 지가 조금 오래되었고 가래가 약간 나오는 점이 다르달까? 그렇다. 결핵은 소리소문없이 찾아오고 초기에는 거의 증상이 없다. 우리가 발목을 삐끗하거나 어느 날 과식 후에 소화가 잘되지 않는 것처럼 언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전 국민의 1/3은 이미 결핵균에 노출되어 있다고 한다. 1500만 명 이상은 면역이 떨어지면 언제든 결핵 환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이다.

결핵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개인 스스로 평소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고 과로, 스트레스를 피해야 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 차원에서 결핵 환자를 관리하고 잘 치료받아 또 다른 결핵 환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이에 현재 민간의료기관과 질병관리본부가 결핵 퇴치라는 종국의 과업을 이루고자 협력하고 있다. 결핵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민간의료기관의 적극적인 참여, 정부의 현명한 앞장섬으로 이제는 부끄러운 4관왕의 자리에서 그만 내려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상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폐
폐결핵
경상대병원 호흡기내과 조유지
조유지 경상대병원 호흡기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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