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안녕하기를....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안녕하기를....
  • 경남일보
  • 승인 2014.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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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순 (전 진주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매일 뜨고 지는 ‘해’이기 때문에 새해 첫날의 ‘해’라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다고 이야기들을 하지만, 우리는 새해 첫날에 뜨는 해에는 뭔가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한다. 지나간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새해를 맞이하고자 한다. 작심삼일의 결과를 가져올망정 여러 가지 새로운 결심도 하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의지를 새롭게 가다듬기도 한다.

필자도 2014년 첫 칼럼에 의미를 부여하여 이번 칼럼만큼은 마음 아프거나 속상한 이야기 말고 훈훈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훈훈한 덕담을 나눌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는다. 밀양, 강정 등 이 땅의 여기저기서 고통을 받고 있거나 분노 속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쉽게 “복 많이 받으시라”는 덕담을 나누는 것이 한가롭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이번 칼럼만큼은 한가로운 이야기로 채우고 싶다. 한가로움 통해 작은 위로와 여유를 선물하고 싶다. 다가오는 설을 생각하며 그 어느 때보다 풍성했던 명절음식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잠시의 쉼을 선물하고 싶다.

어린 시절의 명절 풍경이 떠오른다. 명절이 다가오면 어머니는 깊이 보관했던, 유기로 만들어진 제기와 그릇을 꺼내셨다. 유기그릇은 기왓장 깨진 가루와 재 그리고 짚수세미와 함께 우리 손에 쥐어졌다. 찬장 깊은 곳에서 시간의 더께를 얹어 거무튀튀한 색으로 변색했던 놋그릇들이 우리의 손을 통해 은은한 구릿빛으로 반짝반짝 윤이 나는 경험을 하고 나면 어머니는 명절음식을 준비하느라 바쁘셨다.

두부를 만들고, 묵을 만들고 생선과 산적으로 쓸 고기, 그리고 나물거리와 과일을 준비하는 종종걸음으로 이어지는 시간은 어머니에게는 고된 노동이었을 터이지만, 우리에게는 기대와 설렘이 가슴을 온통 채우는 시간이었다. 부엌에 집안의 모든 그릇이 나와 있고, 그 그릇의 모양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담겨져 있는 메밀묵은 어머니의 소꿉장난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고구마튀김과 오징어튀김, 그리고 프라이팬에서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던 전들은 고소한 기름냄새로 기억에 남아 있다. 어머니의 노동 속에서 익혀진 이 모든 음식들은 해마다 우리 자식들의 마음과 몸을 성큼 자라도록 해 준 위안과 양육의 음식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금, 명절이 와도 나는 이 모든 음식을 다 해내지 못하지만 오늘, 이 칼럼에서는 이 모든 음식을 내가 만든 듯이 모든 분들에게 대접하고 싶다. 그와 함께 우리 모두를 위해 기원하고 싶다. 1월이고, 설이 다가오고 있으므로.

우선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건강했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건강의 중요성이 더 절실히 다가온다. 지금 병환 중에 있는 분들이라면 2014년에는 쾌차하여 건강을 되찾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몸에 관심을 기울이고, 몸이 하는 말을 잘 듣고 몸과 사이좋게, 건강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다음으로는 마음이 평안했으면 좋겠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스트레스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강건한 마음의 힘으로 스트레스를 너끈히 받아안아 평안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 스트레스를 받아안을 수 있기 위해 순간순간 나를 보고 나를 내려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하고 있는 관계가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는, 그리고 서로를 성장시키는 관계였으면 좋겠다. 친밀한 관계든, 스쳐지나가는 관계든, 관계 속에서 서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관계 속에서 가끔씩 상처를 주고받더라도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서로를 쓰다듬을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아파서 울고 있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사회 곳곳에서 사회적·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이 없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힘이 없는 사람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2014년에는 우리 모두가 안녕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강문순 (전 진주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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